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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바이러스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

# 한국에서는 금스크로 불린다. 금처럼 귀한 마스크라는 뜻이리라. 여북하면 자선냄비까지 등장했다. 꽃 피는 이 계절에 말이다. 돈을 넣는 곳이 아니다. 마스크, 손 세정제를 모은다.

서울 광화문에서다. 오토바이 한 대가 자선냄비 앞에 멈췄다. 택배 아저씨다.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고이 간직한 마스크 몇 장이다. 일주일간 어렵사리 마련했다. 몇 시간씩 줄 서서 받은 ‘공적’ 마스크다. 4장 중 2장을 선뜻 냄비 안으로 넣는다. "우린 오토바이 마스크도 있으니까요. 어려운 사람들 주세요.”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바쁜 뒷걸음질에 헐고, 낡은 운동화가 애처롭다.

또 있다. 서울 삼양파출소다. 이른 아침부터 민원인이다. 다리를 조금 전다. 작은 쇼핑백 하나를 던지고는 황급히 사라진다. 마스크 20장, 구운 아몬드 한 봉지가 들었다. 손편지와 함께였다. ‘저는 대인기피증에 우울증 환자입니다. 그래서 밖에 나갈 일이 없어요. 마스크는 경찰관님들한테 더 필요한 것 같아서요.’

# 중국의 장징다오는 은퇴한 의사다. 나이 86에 복직 신청서를 냈다. 우한으로 보내달라는 요구와 함께였다. “병원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 그곳에 가게 해달라.” 노의사의 뜨거움은 받아들여졌다. 전염병 통제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됐다.



샨시아라는 간호사도 있다. 나이는 30세, 직장은 우한 인민병원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를 깨끗이 밀었다. “보호복 입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내 시간은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

# 애틀랜타에서 비행기 한 대가 떴다. 뉴욕행이다. 승객은 30명 남짓이다. 이륙 직전 인증샷을 찍었다. 모두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뉴욕의 SOS를 듣고 두말없이 짐을 싼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이 태운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성명이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용감한 영혼의 전사들이다. 그들이 엄청난 수고와 위험 속으로 떠난다. 이들의 희생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다. 그 어떤 감사와 칭송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 미네소타에서다. 차 한 대가 단속에 걸렸다. 과속 탓이다. “여긴 무슨 일이죠?" 매사추세츠 번호판을 본 경관이 물었다. “보충 의료 요원으로 왔어요.” 경관은 엄한 표정이었다. “당신은 환자를 살펴야 할 의사입니다. 속도위반은 무책임한 일이군요.” 그리고 뭔가를 내밀었다. 과속 티켓이 아닌 마스크 5장이었다. 경찰용으로 지급된 N95 제품이었다. 위반한 여의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도대체 왜?’ 하는 눈빛이다. 경관은 뒷자리를 가리켰다. 가방 안에는 헌 마스크 하나가 들어있었다.

# 제보가 왔다. ‘LA의 동대문 시장’이라는 웨스턴 백화점에서다. 건물주가 입주자들에게 렌트비를 절반만 내라고 알렸다. 본지 기자가 상인들을 취재했다. 한결같이 고마운 마음들이다. 입을 모아 칭찬이 가득하다. “여기서 20년간 장사했는데 렌트비 갈등으로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갸륵한 건물주(이길훈 회장)가 궁금했다. 몇 차례나 인터뷰를 요청했다. 돌아온 건 정중한 거절이었다. ‘그렇게 드러내고, 나설 일은 아니다’라는 겸허함이다.

# 기특한 여고생도 있다. 원단 주문부터 제작까지. 꼬박 사흘 동안 만든 마스크와 손편지를 담았다. 그리고 노인 아파트 현관에 일일이 걸어놨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웃들이다.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린다. 아프게 하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은 고귀해질 것이다. 바이러스는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다.


백종인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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