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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서양 합리주의와 동양 정서주의

미국으로 건너가 LA 인근 버뱅크에서 장기체류를 시작할 때 좋은 이웃들과 어울려 살았다. 전형적인 미국 지성인들로 친절하고 성정이 맑았다. 은퇴한 변호사 가족과 록히드사의 고위 간부 출신 엔지니어, 대형 광고회사에서 중역으로 일했던 노신사 부부, 이혼을 했지만 어린 자녀들과 성실하게 살고 있는 중년 여인 등이 우리집을 둘러싼 이웃들이었다.

10여 년을 살다가 멀리 오렌지카운티로 이사를 하게 되자 우리 가족은 이웃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해서 정성껏 예의를 갖춰 석별의 정을 나눴다. 그때 심정으로는 이사한 뒤에도 그동안 쌓은 우정을 계속 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무 자르듯이 소원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때 뿐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좋은 이웃이었고, 이사 가서도 잘 지내기를 바라는 입장, 이웃으로서 최선을 다한 처신, 그 이상을 넘지는 않았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미국 사회의 온도는 동양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두 바퀴 넘게 돈 뒤 한국에 들어오니 옛정들이 반겨주었다. 친지와 친구, 옛 직장동료, 문우들, 그리고 그 외 몇몇 동아리들은 예전의 인정미 물씬한 정서 그대로 푸근했다. 따듯한 정이 넘쳤고, 약속 시간에 늦든지, 웬만한 실수가 있더라도 눈감아주면서 그런 걸 신경 쓰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절대 미국으로 다시 가지 말라고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친구들도 여럿 있다.



출신과 성향이 다른 서양의 합리주의와 동양의 정서주의는 세계화를 따라 동서간의 문턱이 낮아지자 빈번하게 왕래하다가 가까워졌다. 서로 필요해지고 공감이 늘자 급기야 동거에까지 이른다. 공자와 맹자의 출신지이자 ‘정서’양의 고향인 동양에서 서양인이 살기도 하고, 칸트와 베버의 고향 유럽과 첨단산업의 산실 미 대륙의 ‘합리’군 본향에서 동양인이 거주하기도 한다.

지구촌이 세계화의 물결에 휘말리기 전에는 합리주의와 정의(情誼)주의는 별로 섞이지 않았다. 서양의 합리주의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 활용해 고도의 산업을 일으켜 정서에 빠져 있던 동양의 문명을 압도했다. 뒤늦게 산업화에 눈뜬 중국은 합리주의를 무서운 속도로 흡입, 조직해서 세계의 공장을 건설했다.

아무리 동거생활을 해도 구조적인 차이와 DNA는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중국의 공장에 깔린 합리주의는 지도부에 어른거리는 관념과 관시(關係)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막연한 정의주의는 동양의 어디에서나 소소한 인간관계에서도 자주 경험한다. 사실대로 받아들일 사안을 자신의 이해와 연결해 해석하든지, 비틀어서 옮기는 경우, 얼렁뚱땅 궤도를 벗어나려는 일탈도 그런 범주에 든다. 지나친 이념과 의도, 자신들의 정서라는 웅덩이를 거치는 동안 맑은 물은 오염되기 쉽다.

거꾸로 합리와 이성에 치중하면 세상은 메마른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사를 그렇게 원칙적으로 고집하면 정서의 여림에 쓰린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다. IT세계와 트럼프의 외교전략에서도 그런 인상을 준다.

실제 현실에서는 합리를, 인간성의 회복에는 정서를 놓치면 안 된다는 명제가 지구촌의 공통 과제로 보인다.


송장길 /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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