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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슬픈 영혼의 샴페인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게 한 두 번이랴. 아무 염려 말라고 큰 소리치던 일이 사달이 나고 생각지도 않던 복병을 만나 진퇴양난에 빠진다. 이리 재고 저리 맞추다가 죽 쑤기 예사고 간 잘못 보다가 요리 망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요즘 작은 일에도 자주 놀란다.

나이 들수록 간이 콩알만 해진다. 소싯적엔 간이 배 밖에 나왔을 정도로 기고만장 했다. 세상에 겁나는 일이 없었다. 그 시절이 좋았다. 물 불 안 가리고 사자처럼 덤벼들어 끝장 볼 때가 좋았다. 요즘은 모든 게 두렵다. 나이 탓일까. 살기가 힘들고 괴팍해졌기 때문일까. 사는 게 아프고 죽는 게 두렵다. 산을 넘으면 평지일 줄 알았는데 또 산이 앞을 가로 막고, 산 너머 푸른 강물 찿아 헤맸는데 어머니 젖줄 같은 강물은 온데간데 없고 가시덤불에 걸려 자빠진다.

얼굴 없는 바이러스와 싸우며 검은 마스크 낀 나는 이제 얼굴 없는 여자가 됐다.



길 가다가 알만한 사람을 만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언제 누가 내 얼굴 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내 이름 불러줄까. 사람이 사람을 멀리서 그리워한다. 다정한 손 잡고 껴안고 포옹하고 키스하던 그 달콤한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려나. 요리솜씨 자랑하며 별미나 특식 한 그릇씩 들고와 구식 가라오케에 맞춰 유행이 한참이나 지난 유행가 부르며 띵까띵까 놀던 그 시절은 꿈이였을까. 비좁은 교회 친교실 부엌에서 엉덩이 부딪치며 수백명 먹을 식사 당번 하던 시절이 그립다. 눈물 난다. 그런 아름답고 살만한 날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목이 메인다.

최악을 기록한 캘리포니아 산불로 집과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천연 재해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겠지만 세상살이 돌아가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엉망진창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주 존경하던 어른의 추모예배가 있었다. 리사가 코로나 요주의 인물군에 속해 꽃만 올리고 참석은 못했다. 고령이시지만 너무나 정정하셔서 백세까지 장수 하시리라 믿었는데 교통사고 당하신 며칠 후 황당하게 돌아가셨다. 사는 게 낙엽 같다는 생각, 부스러지고 흩날리다 사라지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찬장 구석에 있던 샴페인 한 병을 꺼낸다. 예전에 누가 귀하게 선물했다. 찢어지게 기분 좋은 날, 마음 맞는 친구가 오면 눈동자 맞추며 우정과 사랑을 다짐하며 건배 들고 싶었던, 나처럼 배가 약간 불룩한 샴페인 병 먼지를 닦는다

프랑스 상파뉴(Champagne)지방에서 만든 스파클린 와인인 샴페인은 코르크 마개를 따면 병 안에 갇혀있던 탄산이 발사돼 거품을 일으키며 함께 축배를 든다.

간직하리라. 그 날이 올 때까지. 가슴 속에 갇혀있던 사랑이 세상 속으로 울음을 터트릴 때까지. 오늘이 아프고 힘들어도 하늘 문이 열리고 땅이 울음을 그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품 속 깊이 사랑의 흔적은 숨겨두리라. 사람이 참사람을 만나 껴안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그 날을 기다리며 축배 들 샴페인은 오래 아껴두리라.

눈물이여 가거라. 한숨이여 사라져다오. 참고 견디면 좋은 날 오리니. 병아리처럼 물 한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깊은 숨 크게 쉬면 시간이 시간을 삼키는 날이 기필코 다가오리니. 생이 흩날리는 낙엽처럼 외롭고 서럽다 해도 가슴 깊이 새겨둔 언약의 말들은 비둘기 되어 날아가리니. 슬픈 영혼 담긴 샴페인 병 마개 따고 갇혀있던 환희의 언어들을 폭포처럼 그대 창가에 뿌려주리라. (Q7 Fine Art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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