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뜨락에서] 남편의 인생

불가에서는 인생은 고해라고 했습니다. 고해에서 벗어나는 길은 모든 인연을 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가족을 떠나 출가를 하고 세상과 연을 끊으려고 결혼도 하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고 남을 미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저 민생을 사랑하고 밋밋하게 자비를 베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호화롭게는 살지 않지만, 보통사람들처럼 세파에 시달리며 고생을 하지도 않습니다.

얼마 전 친구가 보내준 카톡에는 불쌍한 여자의 일생이란 글이 있었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하고 자라다가 시집을 와서 시부모님 모셔야 하고 남편과 시동생들 거느려야 하고 자식들을 위하여 고생한다는 말입니다. 남들이 자는 새벽에 일어나 찬물에 쌀을 씻고 아침을 차리고 식구들의 남긴 밥으로 연명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어머님에 대한 사랑만을 노래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여성 상위시대입니다. 요새는 결혼하여 시부모님을 모셔야 할 남자들은 결혼하기가 힘이 든 세상입니다. 물론 재벌 집이어서 물려받을 재산이 많거나 아들이 본부장으로 재벌의 총수가 될 남자들은 다르겠지요. 남자들은 좋은 대학을 가려고 죽어라 하고 공부를 합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스펙을 만들어야 직장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직장을 구해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궂은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일반외과 전공의를 했습니다. 미국 외과 전공의는 피라미드 시스템이어서 일년생이 16명이면 2년생은 8명입니다. 그리고 3년생은 4명이고 마지막 4년생이 2명입니다. 그러니 16명이 들어와 2명이 전공의가 끝이 나서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해마다 반이 잘려나가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수님의 눈에 들어야 하고 의국장의 추천을 받아야 합니다.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입니다. 교수님들은 7시부터 회진을 돌고 7시 반이나 8시면 수술을 시작합니다. 교수님들이 회진을 시작하기 전 6시에는 의국장의 회진이 있습니다. 이 의국장의 회진이 교수님의 회진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새벽 5시에 회진을 하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준비를 잘못하여 의국장의 추천을 못 받으면 진급을 할 수 없습니다. 매일 4시 30분에 병원에 가고 일이 끝나면 당직을 서고 의국장이 시키는 일을 하고 논문을 썼습니다.



집에서는 외과 의사 남편이라 이런 고생을 하는 줄 몰랐겠지요. 이런 과정을 4년을 견디고 졸업을 했습니다. 전문의가 되고는 이런 훈련 과정과 같은 삶에서는 벗어났지만 사회란 거칠고 험악했습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우면 참 힘들구나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올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머리가 하얀 중년 배우들이 나와 합창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남자의 인생이란 노래였습니다. 일을 끝내고 늦게 나와 광화문에서 봉천동까지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지쳐서 집에 돌아가며 탄식을 하는 아버지란 이름 아래 살아가는 남자의 인생이라는 노래입니다. 그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에게도 자식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남편의 고뇌. 그것을 품고 살아가는 남자의 인생도 여자의 인생만큼이나 고달프고 서러운 삶입니다. 아니 더 서러울지도 모릅니다.


이용해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