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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홀로 남겨두지 않게 해주소서

교황은 밤새 기도했다. "주여! 어찌해야 합니까."

세상은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전날 로마 시내 900여 개 성당이 문을 닫았다. 일부에서 성당 폐쇄는 지나치다는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격리한 것'이라고까지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간절히 애원했다. "주여, 제게 능력을 주소서. 불안에 떨고 있는 이들을 도울 최고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게 해주소서."

다음날 로마 교구 추기경은 성당의 문을 계속 열어놓겠다고 발표했다. 하루 만에 번복한 것이다. 교황은 "과감한 조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LA시가 16일 과감한 조처를 내렸다. 식당에서 식사를 못하게 했다.

웨이트레스 A는 이날 오전 10시 평소대로 출근했다. 휴교령으로 집에 있는 두 아이(9학년, 6학년) 먹을 것을 챙겨주고, 게임만 하지 말고 공부도 좀 하라고 잔소리도 해놨다. 식당에 들어서자 사장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

영업 준비를 시작하자 "하지마!" 한다. 그러면서 LA시 행정명령을 이야기했다. "뭐라고요! 네?" 일단 이달 말까지란다. 할 말이 없었다. 이러다 해고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눈 앞이 캄캄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A는 되뇌였다. '어찌해야 합니까'.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권력'들이 무너지고 있다.

교계는 오랜 기간 열성적으로 확대해온 집회(예배)를 자체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교회의 집단 장소로서의 공공성을 인정하며, 2000년의 권위를 쌍방향 직접관계에서 수동적 온라인 관계로 넘겼다. 학교도 문을 닫았다. 교사의 눈을 보지 못하는 수업만 진행 중이다.

만지지 못하는 돈(숫자)으로 최대 권력을 이어오던 경제의 탑도 흔들거리며 쏟아져 내리고 있다. 짜릿한 재미의 스포츠도 얼어붙었다. 그토록 목매던 정치는 아예 뒷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멋진 수사를 사용하며 될 수 있는 한 따로따로 지내라고 한다. 벽을 쌓는게 좋을 거 같다며 사람끼리, 인종끼리, 국가끼리 차단의 벽을 올리고 있다.

나만 살자는 생명력은 사방팔방으로 퍼지고 있다. 뜻밖에 물건까지 동나고 있다. 대량생산의 자본주의 한복판에 살지만, 걱정과 불안도 대량생산된다.

바이러스(전염병) 입장에서 보면 처음도 아니다. 몇 번을 다녀갔다. 큰 타격을 입히기도 했고, 어떤 집단을 아예 몰살시키기도 했다. 그래도 대부분은 졌다. 교황 기도대로 그들(인류)은 최고의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상상도 못한 일이 처음 벌어지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자신들이 옳다고 내놓은 과감한 조처 안에서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온갖 동식물의 강력한 무기는 동료를 홀로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인류는 그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교만 떨고 있지만, 한때 바이러스 같은 존재일 때도 있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페스트를 물리친 시민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생각한다.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가구나 속옷들 사이에서 생존한다.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나 손수건, 휴지 같은 것들 틈에서 살아남는다. 언젠가는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서 또다시 쥐들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 행복한 도시로 쥐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올 것이다.

맞다. 계속 올 것이다.

교황의 '홀로 남겨두지 않게 해주소서'란 기도문구에서 A가 떠오른다.


김석하 신문제작국장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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