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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얘기] 삶의 목적을 바꿔보라, 몰라던 길이 눈에 보인다

2021년 신축(辛丑)년 새해다. 소띠해는 특히 힘들었던 지난해를 털고 애틀랜타 독자들 모두 소처럼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의 한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 ‘선입견을 버리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이 문장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내가 보고자 원하는 것만 보인다는 말이요, 원하는 것이 바뀌면 보이는 것도 바뀐다는 얘기다. 세상 보는 관점을 바꾸면 몰랐던 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얘기다. 도대체 뭔 소리냐고? 1977년 미국서 있었던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 얘기로 시작한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학원생 대니얼 사이먼스는 실험을 통해 ‘목적’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우선 사전에 한 영상을 만들었다. 각 팀 3명씩 6명이 농구하는 장면이다. 한 팀은 하얀색 유니폼을 다른 팀을 검은색 유니폼을 입혔다. 경기공간은 작았고 가까이서 촬영해 선수들 표정까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선명한 영상을 만들었다.

다음에 설문 참가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렸다. 영상을 보고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공을 몇번이나 주고받는지 패스 횟수를 세어보라는 질문이다. 응답자는 모두 15회라고 답했다. 정답이었다. 그런데 정답에 만족해하는 참가자들에게 사이먼스는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영상에서 고릴라를 본 적이 있습니까?” 장난치냐고 웃는 사람들에게사이먼스는 영상을 다시 보여주며 말했다. 이번에는 패스 횟수를 셀 필요가 없이 화면에 고릴라가 등장하는지 살펴보라고.



시작 후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화면 정 중앙에서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이 보였다. 고릴라 만큼 덩치 큰 사람이 화면 앞을 여러 번 지나가고 있었다. 정상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놓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실험 참가자의 50%가 처음 영상에서 이 장면을 보지 못했다.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의 탄생 순간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어째서 반이나 되는 참가자들이 커다란 고릴라를 못 봤을까? 그들 눈이 흰색 유니폼을 입은 팀의 패스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 목적은 오직 흰색 유니폼 팀의 패스 횟수였기 때문이다. 목적에 따라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인 이유다.

과학적인 설명을 더 하면 이렇다. 우리 눈은 망막으로 사물을 인지한다. 망막이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해 주는 구조다. 이 망막 속 중심역할은 ‘황반’이다. 빛이 초점을 맺는 부위이며, 시각정보를 ‘고해상도’ 처리를 해줌으로 뇌가 정확히 사물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제는 이 고해상도 처리를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시신경 세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모든 시각정보를 고해상도 처리한다면 머리 크기는 지금보다 몇배 커져야 한다. 마치 영화 ET의 외계인처럼.

‘왕짱구’ 대신 인간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중요한 장면들만 황반으로 처리하기로. 내가 보기로 맘먹은 부분만 고해상도로 ‘확실히’ 처리하고 나머지 주변은 적당히 넘어가기로. 복잡한 세상을 우린 이런 식으로 대처한다. 내 관심사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적당히 무시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것 중 내 목적 달성에 필요한 것에만 시선을 고정하면서.

내 목적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보이지만 나머지는 그저 스쳐 가는 고릴라다. 삶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무엇을 보고 살아갈 것인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바로 눈앞에 있어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영적 철학에 “눈에 보이는 세상은 겉모습이요 환영에 불과하다” 는 말이 있다. 욕망에 눈이 멀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위 실험에 의하면 어쩜 이 얘기는 과학적인 사실 그 자체다. 눈은 ‘도구’다. 내가 계획한 목적에 따라 그저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여주는. 내가 정한 삶의 길을 고해상도로 정확히 보여주는 대가로 나머지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제대로 된 목적의 삶이 아니라면 평생 ‘진짜’를 모르고 살다 갈 수 있단 얘기다.

지금 삶이 쉽지 않다면 생각해보자. 어쩌면 내가 정한 목적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시각이 다른 곳에 있어 정작 필요한 것은 코앞에 두고 보지 못하는지 모른다. “어차피 삶은 다 그런 거야 죽으면 끝인데” 가 아니라 “삶은 잘못이 없어 문제는 내게 있어” 가 정답이다. 당장 내 삶이 꼬여 있다면 세상을 보는 내 시각이 문제요 삶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사이먼스의 실험처럼 내 시각을 바꾸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쩜 그동안 내가 원했던 삶의 길은 남들처럼 오로지 부와 명예였다. 이 야심 때문에 삶에서 많은 것들을 못 보고 지나쳤을지 모른다. ‘의미 있는 삶’은 뭘까? 나만의 새로운 삶의 목적을 가슴에 담는 순간 갑자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선입견을 버리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얘기다. 대충 남 흉내 내기가 아니다. 내 삶의 목적에 대한 절실함이 담겨야 한다. 간절히 원해야 이뤄진다는 얘기다.

삶은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여준다. 나머지 세계는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지금 내가 다른 것을 보겠다고 말하는 순간 내 눈은 사라졌던 수많은 정보를 갖다 줄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 고 맘 먹는 순간, 삶은 그동안 내가 몰랐던 길을 보여줄 것이다.

세상은 ‘딱’ 아는 만큼만 보인다. 마침 새해다. 나만의 새로운 삶의 방향과 목적을 세워보자. 목적이 바뀌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 보이지 않던 고릴라, 곧 새로운 삶의 길이 보인다.



정승구 칼럼니스트 /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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