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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해탈은 배탈이다

388시 914분:하품을 하다. 하품도 내게는 아픔이다. 삶을 너무 과식했나 보다. 배탈이 날 것 같다. 해탈도 내게는 배탈이다. 과식이-장경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부분)

배탈이 난 사람은 다급, 절실하다. 그런 아픔을 느껴야 치유의 길을 찾는다. 부처님이 깨달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four noble truths) 중 첫 번째가 괴로움, 고(苦, suffering)다. 괴로움을 배탈처럼 느끼기 전에는 해탈은 없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코프는 반역죄로 10년 형을 받고 시베리아 노동수용소에서 8년째 복역 중이다. 2차대전 중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3일 만에 탈출, 돌아온 것이 빌미가 되었다. 형기가 끝난다고 석방될 가망도 별로 없다.

알렉산더 솔제니친(1918-2008)의 1959년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 작가는 구 소련 시절 대표적 반체제 지식인. 자신이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을 소설화한 것이다. 그는 이 소설로 1970년 노벨 문학상을 탔다.



새벽, 손가락 두 개만큼 두꺼운 얼음이 창문에 달려있다. 모범수 슈코프는 몸살기가 있다. 그래도 일을 해야 한다. 추위 속에 하루 종일. 모닥불을 피워 놓고 얼어 붙는 시멘트를 녹여가며 벽돌을 쌓는 일. 그는 꼼꼼히 정성을 들여 반듯하게 벽을 만든다. 최고의 기술자라고 칭찬도 받고, 저녁에는 건더기가 듬뿍 든 죽을 두 그릇이나 먹는 행운도 얻는다. 공사장에서 쇳조각 하나를 줍는 횡재도 한다. 몰래 가지고 들어오며 경비병에게 걸릴 뻔 했지만, 무사 통과.

잠자리에 들면서 슈코프는 하루 동안 좋은 일이 참 많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인생 오케이. "구름 한 점 없던 하루 끝. 행복하다고 할 만한 날이다." 슈코프의 독백.

시인 장경린은 슈코프에게 인생을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의 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23시 45분에 시작하여 999시 9999분에 끝난다. 98시 421분, 슈코프는 확신에 대해 회의를 한다. "확신이 날 찾아 왔다. 나는 그를 달래서 돌려보낸다. 다시는 날 찾지 마라 알겠니?"

소설 속의 슈코프는 예쁘지만 터무니 없는 확신을 했던 사람이다. "달은 매달 태어나고 죽는다. 죽은 달을 하나님이 잘게 부수어 별을 만든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탈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시인은 슈코프에게 삶에 대한 의심을 심어 준다.

388시 914분, 시인은 슈코프에게 하품이라는 아픔을 준다. 해탈의 기미. 아련한 아픔은 구체적인 배탈로 이어진다. 삶의 과식이 원인이다. 이쯤해서 슈코프는 그의 존재에 탈이 났고, 그 탈은 탐(貪)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인식한다. 부처님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중 괴로움 (苦)과 괴로움의 원인(集)에 대한 알음알이.

그러나 슈코프에게 아직 배탈난 자의 절박함이 없다. 괴로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 (滅·멸)이 생기지 않았고, 벗어나는 길(道·도)를 알지 못한다. 부처님이 가르친 고(苦), 집(集), 멸(滅), 도(道) 사성제를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첫 번째 괴로움을 절박하게 느껴야 한다. 시인이 덤으로 준 긴 시간 안에도 슈코프는 거기에 이르지 못한다. 그에게 주어진 수용소의 날, 3653일, 그리고 그 이후 셀 수 없는 날들, 그는 그렇게 정처없이 헤맬 것이다. 그것이 윤회다.

성난 코끼리에 쫓기던 사람이 깊은 우물을 발견한다. 마침 굵은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뻗어 있다. 덩굴을 잡고 우물 속에 숨는다. 바닥을 보니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다. 위를 보니 흰 쥐와 검은 쥐가 덩굴을 갉아 먹는다. 그런데 위쪽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그 상황에서 그는 혀로 꿀을 받아 먹으며 인생이 달콤하다고 느낀다.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우화.

슈코프의 행복이 그런 달콤함이다. 쾌락의 순간은 지나간다. 항상 있는 것은 없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보고 싶은 사람을 보는 것도, 구하는 것을 얻는 걷도 고(苦). 그렇게 느껴야 해탈을 찾는다.


김지영 / 변호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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