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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정치를 모른 그녀, 국민을 모른 그녀

정구현 / 기획취재부장
정구현 / 기획취재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8/04/02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8/04/01 11:23

그녀는 정치를 몰랐다.

스물셋의 새내기 여성정치인이었으니 정치공학적 셈법에 능숙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다.

다만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뽑아준 유권들이 원하는 바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됐으니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공약은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브루클린 다저스의 LA행'이다.

그 기적 같은 이야기는 65년 전인 1953년으로 거슬러간다. USC를 갓 졸업한 로잘린드 위너 와이먼(87)은 LA 5지구 시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녀의 등장은 흥밋거리는 될 수 있었지만 정치적 위협은 되진 못했다. 남성 정치인들은 스물세 살 여자가 뭘 할 수 있겠나고 비웃었다.

비록 정치는 몰랐지만 그녀는 몸으로 뛰었다. 와이먼은 회고에서 "시민들을 만나려 하루 7시간씩 걸었다. 닳은 신발이 13켤레를 넘었고, 그 이후부터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바닥 민심을 만났던 그녀는 바람을 일으켰다. 예비선거 1위로 결선에 진출해 52% 득표로 당선됐다.

LA 역대 최연소 시의원이자, 1915년 에스텔 린지 이후 38년만의 두 번째 여성 시의원의 탄생이었다.

당선 후 그녀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을 LA에 만들겠다는 공약 이행에 나섰다. 그녀의 믿음은 확고했다. "메이저리그 야구팀도 없는 도시가 대도시라고 할 수 없잖아요."

때마침 연고팀 이전의 붐이 일었다. 1953년 보스턴 브레이브스가 밀워키로, 1954년 세인트 브라운스가 볼티모어로 둥지를 옮겼다.

그녀는 브루클린 다저스를 주목했다. 반대하는 쪽들은 '점입가경'이라고 비웃었다. 1955년 당시 다저스는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역대 최고의 황금기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설득했다. 당시 구단주인 월터 오말리에게 2년간 수차례 편지를 썼다. 오말리는 회고에서 "갓 스무살을 넘은 여자가 너무 뻔뻔할 정도로 용감했다"고 했다.

그러다 오말리가 마음을 움직이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벌어졌다. 다저스의 새 구장 건설계획을 뉴욕시가 반대하면서다.

소식을 들은 그녀는 다저스의 구장 신축안을 시의회에 상정했다. 최종 표결이 있던 날, 다른 시의원들은 격론을 벌였다. 경제적 효과, 예산 문제, 대중 교통 등 찬반이 오갔다. 아직 이전을 결정못한 오말리 구단주를 움직인 건 그녀의 말 한마디였다.

"구단주님, 최소한 LA에선 비가와서 경기가 취소될 일은 없어요. 흥행은 보나마나 아닌가요."

얼마 뒤 오말리 구단주는 뉴욕에서 LA로 날아와 현재 다저스 구장 부지인 '차베스 레빈'을 헬리콥터로 상공에서 내려다봤다. 다운타운에서 10분 거리 언덕의 '위치'에 그는 무릎을 쳤고, 이전을 결심했다. 1962년 뉴욕에서 LA로 연고지를 옮긴 다저스 역사의 알려지지 않은 비사다.

한인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LA한인타운 토박이기도 하다. 그녀의 부모는 9가와 웨스턴에서 약국을 경영했다. 그녀의 강력한 지지세력도 당시 한인타운 주민들이었다.

그녀는 아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다저스 구장을 즐겨찾는다. "다저스 구장에 가득찬 관중을 볼 때마다 벅찬 자부심을 느껴요. 시민들이 이 팀을 사랑했기에 LA는 소중한 팀을 가질 수 있었어요."

역사를 바꿨지만 그녀는 자랑하지 않았다. 공로는 자신을 뽑아준 시민들의 몫이라고 했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누굴 위해 해야 하는지 아는 정치인이었다.

메이저리그 개막전 즈음 한국에서 또 우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말 많았던 '7시간의 행적'이 드러나서다. 온 국민이 알고 싶어했던 '도대체 뭘 했느냐'에 대한 답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허탈한 결론으로 끝났다. 그녀는 한마디만 했어도 됐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고.

그녀는 국민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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