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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대 웨이드 판결은…생명이냐 사생활 권리냐

신복례 기자
신복례 기자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7/19 미주판 5면 기사입력 2018/07/18 20:51

보수ㆍ진보 수십 년 충돌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제인 로(가명)는 원치 않는 임신 후 낙태를 원했지만 주가 법률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어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세라 웨딩턴과 린다 커피라는 두 여성 변호사를 찾아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댈러스 카운티 지방검사인 헨리 웨이드였다. 그래서 소송 명칭이 '로 대 웨이드(Roe vs. Wade)'가 된 것이다.

이 소송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고 4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1973년 1월 22일 7대 2로 낙태 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입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 없이, 정부가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을 박탈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4조의 '사생활 권리'를 들어 정부가 개인의 낙태를 금하지 못하게 했다. 다만 출산 직전 3개월간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생존할 가능성을 인정해 생명체로서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임신 6개월 이상이면 낙태를 금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판결에 따라 낙태가 합법화하면서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각 주와 연방 법률들은 폐지됐다.

그러나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낙태 문제는 미국 사회의 뜨거운 논란거리가 됐고 공화당과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보수단체들과 민주당과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진보단체가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마 맞붙는 주요 쟁점이 됐다.

낙태 반대 진영은 항의시위나 의회 로비, 소송 등을 통해 낙태를 막거나 제한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찬성 진영은 여성의 권리와 선택이라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인들의 생각도 나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송을 제기했던 로는 나중에 낙태반대 운동가로 변신했다. 생명을 없애는 낙태를 옹호한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만큼 낙태 문제는 한쪽만 옳다고 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사안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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