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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포도는 안돼!" LA웨스턴 길 '과수원' 현장

8가~9가 사이 과일 가게 5곳 밀집
10미터 간격 촘촘히 치열한 경쟁
'싼 가격' '오개닉' '긴 역사' 강조

8가 갤러리아 몰 내 과일 가게 ‘룰루랄라’에서 3일 오전 청과물을 들여와 진열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8가 갤러리아 몰 내 과일 가게 ‘룰루랄라’에서 3일 오전 청과물을 들여와 진열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웨스턴 길 8가와 9가(제임스 우드 길) 사이는 ‘과수원’이다. 별생각 없이 지나는 도시의 길. 하지만, 이 길 곳곳에는 과일 가게 5곳이 숨겨져 있다. 10미터 간격으로 3곳이 운집한 지역도 있고, 길 건너에도 2곳이 있다. 쇼핑몰 안에서 파는 가게, 바깥에 물건을 내놓은 가게, 또 길가 트럭에서 과일을 파는 곳도 있다. 오개닉 물건임을 강조하는 곳도 있고, 싼 가격을 내세우는 가게도 있다. 노점이지만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터줏대감도 있다.

풍성한 가을, 이들은 나름의 전략으로 과일을 판매한다. 과일은 나무에서, 땅에서 열리지만 그 맛 뒤에는 이들의 치열한 경쟁이 있다. 문 연지 한 달 된 갤러리아 몰 내 ‘룰루랄라’ 과일 가게를 중심으로 웨스턴 길 과수원 동네를 찾았다. (※업소 간 경쟁으로 인해 업주들은 자신의 세세한 개인사, 이름 등을 밝히기 꺼렸다.)

"많이 사시면 손해예요."
이게 무슨 소린가. 장사꾼이 할 말은 아니다. 손님이 쓱 돌아보자 "그때 그때 필요하면 사세요" 한다.
"이거 맛있어요?" 하면 바로 "잡숴보세요" 한다.그러면서 "과일은 무조건 먹어봐야 해."
가게 중간쯤엔 조그만 도마와 과도가 준비돼 있다. 어떤 남성은 자두를 썰어 먹으며 "조금 전 점심을 먹어서 디저트가 필요해" 농을 던지고 한 봉지 사간다.



1일 오전 가게에는 여성 3명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로 "이모 언니" 하는 걸 보니 가족인 듯싶다. '룰루랄라' 소리만큼이나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업주 A씨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맵시 있는 스포츠카를 몰았다. 병원에서 일하며 수입이 괜찮았다. 명품 백에 구두 시계. 하지만 환자가 줄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과일 청과물 가게를 떠올렸다.

"유통업을 휩쓸고 있는 아마존에도 과일 청과물은 없는 거로 알고 있어요. 승부를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엔 스포츠카에 과일 박스를 싣고 배달을 먼저 했다. 아는 곳에 과일 박스를 들고가자 잘 알던 지인이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창피했다. 일을 마치고 차에서 울었다. '난 거지야'.

A씨는 안면이 있던 청과물 판매상을 찾았다. 애걸했다.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우선 과일을 먼저 땡겨서 팔아보겠다고. "싼 가격에 좋은 품질을 내놓으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어요. 비록 망했지만 두 번의 비즈니스 경험과 활달한 성격은 좋은 자산이었죠."

8가 갤러리아 몰 안에 옛 서점 자리가 보였다. 장사 자리로 좋을 듯싶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니 10미터 오른쪽에는 트럭 과일 가게 정면으로 10미터 앞에는 오개닉을 전문으로 파는 번듯한 청과물 가게가 이미 들어서 있었다. 트럭은 20년이 됐고 오개닉 가게는 2년 전 입점해 있었다. 어떡할 것인가.

잠깐 대화하기가 무섭다. 또 손님이 들이닥쳤다. 할머니 세 분. 이 감 안 떫어? 얼마야? 이거 1파운드만 줘. 마음이 바뀌셨는지 자두로 바꿔 달라신다. 그리고는 도마 있는 곳으로 가서 자두와 멜론을 썰어 드신다. 한두 입이 아니다. 그리고는 또 사과 얼마야? 고구마는? 이거 오래된 거 아냐? 위생국 시 공무원 못지않게 까다로운 할머니 3인방을 A씨는 그러려니 툭툭 대응도 잘한다. 한 할머니가 포도를 기웃거리자 갑자기 A씨가 단호하게 말한다.

"할머니 포도는 안돼!" 어라 룰루랄라 집이 일순간 싸아~.

"왜?" "할머니 당 있죠?" "있지" "안 팔아요. 너무 단 과일 드시면 안 돼요 큰일나요." 옆에 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그 할머니가 탐스런 포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자 A씨 "정 드시고 싶으시면 요것만 그냥 가져 가세요." 그리고는 포도알 서너 개 붙은 조그만 꼭지를 건넨다. "병원에서 일했더니 의사가 하던 말이 생각나서요." 할머니는 과일 대신 '마음'을 받고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아이고 여기 싸기는 정말 싸네" 하신다.

너무 쇼하는 거 같다고 하자 "제가요? 뭐하러요? 할머니들 사시는 게 얼마나 된다고." 하긴 처음 볼 때부터 자기는 어르신들한테 포도나 망고 등 너무 단 과일을 잘 안 드린다고 하긴 했었다.



이번엔 아줌마 몇 분이 들어왔다. 쏟아지는 말들이 연극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1불 받으면 어떡해?" #."그거밖에 안 해? 그럼 더 넣어야지." #.(거스름 돈 건네자) "아이 이건 넣어둬." #.A씨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왜?" "이거 좀 넣어가셔야지" 공짜 자두 네댓 개가 봉지에 들어간다. 손님과 업주가 주고받는 내추럴한 대화에 다시 한번 '이거 뭐지 장사하자는 건가'.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계약한 거예요?" 끊어진 대화를 연결하자 A씨는 "아이고 정신없네 휴… 옆에는 20년 된 트럭 앞에는 딱 봐도 여유있는 2년 된 가게 장사는 목인데 그걸로 보면 안 좋은 자리였죠. 그런데 싸게 파는 데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싸고 물건 좋고 사람 냄새 나는 가게로 하자는 결심에 이곳에 자리를 얻었어요."

뻘쭘히 서있기 뭐해 포도 박스 20개를 냉장고에 넣는 걸 도왔다. 박스를 전달하면서 A씨는 "그러고 보니 우리 가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도매상을 왔다갔다해요. 빠진 물건 계속 채워놓고 하다 보면 신선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때 한 젊은 부부가 들어왔다. 포도를 10박스나 달란다. 둘이 소곤소곤 말하고 있어 끼어들었다. "뭐하시는데…." "주스 가게 해요." "아 이 포도를 주스로" "네." A씨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귀동냥해보니 '다운타운 너무 복잡해서 파킹도 어렵고. 여긴 파킹 좋고 포도도 싸니까 금상첨화. 앞으로 또 올게요' 한다.

하긴 이 가게 인사는 좀 다르다. "어서 오세요"보다 "오셨어요"가 대부분이다.

오개닉을 주로 판매하는 인근 과일 가게에도 들렀다. 업주 B씨는 "저희는 파머스 마켓 40곳 이상에 물건을 대고 있어요. 20만 평 농장도 갖고 있고 다른 2곳과 좀 다르죠. 과일 비중도 한 20% 정도고. 그래도 손님이 오시면 보통 1~2백 불씩 사가는 분이 많아요. 굳이 다른 가게 신경 쓰지 않아요. 잘됐으면 해요" 한다.

트럭 가게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웨스턴 길 건너편에 있는 가게는 "이곳이 재개발되는 관계로 빠르면 10월 중 문을 닫을 거로 보인다"고 했다.

다음날 일찍 다시 A씨의 가게를 찾았다. 진열된 물건이 없다시피 했다. A씨는 물건을 떼러 나가 있다고 했다.

과일은 추위와 더위를 머금어야 달콤하게 태어난다. 과일을 파는 사람은 때론 그 추위와 때론 그 더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김석하 선임기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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