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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사역 25년…"자식같은 이들"

LAT 김석기 목사 부부 소개
애리조나·텍사스까지 운전
수감 사연엔 이민생활 아픔

오네시모 선교회 김석기 목사(왼쪽에서 세번째)와 김경숙 사모(왼쪽에서 다섯번째)가 선교팀과 함께 찍은 사진. [오네시모 선교회]

오네시모 선교회 김석기 목사(왼쪽에서 세번째)와 김경숙 사모(왼쪽에서 다섯번째)가 선교팀과 함께 찍은 사진. [오네시모 선교회]

"재소자가 저의 양떼들입니다."

김석기 목사와 김경숙 사모는 주말만 되면 새벽부터 운전대를 잡는다. 한인 재소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들 부부는 동이 트기도 전 어두컴컴한 프리웨이를 타고 커피와 삶은 고구마를 먹으며 기나긴 길을 떠난다. 그렇게 재소자 사역을 펼쳐온 게 어느덧 25년째. 운전시간만 하루에 14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24일 LA타임스는 부에나파크 지역 오네시모 선교회의 김석기 목사와 김경숙 사모의 사역 이야기를 보도했다.

그동안 오네시모 선교회 사역은 본지를 통해서도 꾸준히 소개돼왔다.



김 목사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가주 지역 내 35개 교도소와 6곳의 연방 교도소를 거의 매주 다니고 있으며 종종 애리조나와 텍사스까지도 간다"며 "운전 시간이 길어 미니밴 뒤에 매트리스를 깔고 아내와 밤을 지새운 적도 많지만 그러한 불편 정도는 우리를 기다리는 한인 재소자들을 위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소자 사역에는 한인 이민자들의 눈물이 배어있다. 먹고 살기 위해 일만 했던 부모 밑에서 탈선한 자녀가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가는 경우, 한때 실수로 복역중인 이민자 등 재소자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이민 생활의 슬픔을 체감하게 된다.

김 목사는 1989년 미국에 신학 공부를 하러 왔다. 원래는 카펫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잘나가던 CEO였다. 계속 안정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30대 후반에 병치레를 하면서 사역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김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교회를 시작한 뒤 우연히 오렌지카운티교도소의 한인 재소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됐다. 편지는 단지 기도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직접 교도소를 찾아가 편지를 보낸 재소자의 사연을 들어주면 위로를 전했다.

김 목사는 "그리고 나서 한 한인 미혼모의 자녀가 절도죄로 재판에 회부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그 아이를 위해 법정에 나간 적이 있었다"며 "그때 통역사를 통해 자녀에 대해 울면서 판사에게 선처를 구하는 그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했던 게 이 사역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김 목사 부부에게 한인 재소자들은 마치 자식과 같다. 김 목사는 재소자 사역을 "기다려주는 일"이라고 했다. 매주 교도소를 돌며 한인 재소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사연을 묵묵하게 들어주고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상담도 해주고 성경이나 신앙 서적을 보내주면서 영혼이 변화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현재 김 목사는 현재 재소자를 상대로 성경 대학도 진행하고, 한국으로 추방된 재소자를 위해 추방자 교회, 셸터(서울 도봉구) 등을 마련하는 사역도 하고 있다.

▶문의:(714) 739-9100/홈페이지(onesimusministry.org)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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