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Los Angeles

67.0°

2020.09.26(Sat)

[기자의 눈] 셀폰 먹통되니 ‘비창’이 들렸다

홍희정 / 디지털부 기자
홍희정 / 디지털부 기자 
  • 글꼴 확대하기
  • 글꼴 축소하기

[LA중앙일보] 발행 2020/06/25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20/06/24 20:12

어 뭐지? 전화가 먹통이다. 오전 10시쯤이면 어린이집에서 아들이 아침을 잘 먹었다며 사진을 보내온다. 그런데 웬일인지 고요하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가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다. 알고 보니 전국적으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단다. 그것도 메이저 통신사 4군데 모두가 말이다.

지난 15일, 메이저 이동통신사 서비스가 중단되는 장애가 발생해 커다란 혼란을 빚었다. 운영중단 모니터링 서비스 ‘다운디텍터닷컴(Downdetector.com)’은 “이동 통신 서비스 중단이 얼마나 퍼졌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트위터 등을 통해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고 보고했다.

이 심각한 문제는 LA를 포함, 휴스턴, 시카고, 뉴욕, 애틀랜타 등 대부분 대도시 권역에서 발생했다. 전화를 걸려고 하면 바로 끊기는가 하면, 데이터가 아예 터지지 않는 등 고속 인터넷망 기능도 마비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통신사 먹통 현상은 T모빌의 네트워크 송수신 트래픽에 장애가 원인이었다. T모빌에서 문제가 생기다 보니 다른 통신사에서 T모빌 이용자에게 전화를 걸게 되더라도 연결이 되지 않고, 결국 거미줄처럼 엮인 통신망 전체에 마비가 왔다. 당시 T모빌에만 접수된 소비자 불만이 10만 건에 달했을 정도다.

업무상 전화를 걸어야 할 때도, 받아야 할 일도 많다. 데이터가 터지지 않으면 하다 못해 내비게이션도 작동이 안 된다. 유튜브 등 동영상도 볼 수 없다. 휴대폰은 그저 시계, 스케줄 확인 용도에 그친다.

처음엔 불안했다. 그런데 모두가 다 전화가 안 된다 하니,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하루 동안 휴대폰을 사용하지 말아보자 다짐했다. 늘 시야에 뒀던 휴대폰을 멀리 떨어뜨려 놨다. 휴대폰 작동이 다시 되지 않을까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평소 같으면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인스타그램 등 SNS를 봤을 텐데, 이것을 멈추니 손이 심심했다. 대신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내가 앉은 대각선 맞은편으론 꽃이 있었고, 오른쪽 벽에는 짙은 얼룩이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던걸까.

손목시계도 꽤 쓸모 있어졌다. 액세서리용으로 차던 시계도 휴대폰이 없으니 자주 확인하게 됐다. 다행히 시계 건전지 수명은 다하지 않았다. 운전할 때 휴대폰을 연동해 음악을 듣는 대신 라디오를 틀었다. 주파수를 돌렸다. 이렇게나 많은 채널이 있었다니. 오랜만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2악장을 들으며 차분한 퇴근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동수단을 속도별로 나열해보면 걷기, 뛰기,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 등이 있다. 그런데 빠를수록 주변을 둘러보기 어렵고 느릴수록 많이 보인다. 빠르고 편리한 게 좋긴 하지만, 때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보지 못한 것들을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생활을 하며 10분 이상 걸을 일이 잘 없지만, 같은 거리도 걷다 보면 길에 핀 잡초까지도 보인다. 걸을 때 숨이 차는지, 발이 아픈지 안 아픈지도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멈춰서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짧은 시간이었지만 휴대폰 먹통을 계기로 우연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관련기사 기자의 눈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김혜린 재정 플래너

김혜린 재정 플래너

김준서 이민법 변호사

김준서 이민법 변호사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