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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홈리스들의 이름을 불렀을 때…

지난 12월 21일은 전국 홈리스 추모의 날이었다. 매년 이날이 오면 전국의 홈리스 지원단체, 종교기관 등은 해당 지역에서 1년 동안 사망한 홈리스들의 명복을 빌며 촛불을 밝히는 행사를 연다. 올해로 30년째를 맞는 홈리스 추모의 날이 21일로 정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연중 밤이 가장 긴 동지이기 때문이다. 겨울 추위와 싸우는 홈리스에게 해가 가장 짧은 동지는 1년 중 가장 힘겨운 날일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홈리스들의 고충이 더 컸다.

오렌지카운티(OC)에서도 홈리스 추모 행사가 열렸다. 호프포리스토레이션(Hope4Restoration)이란 단체가 주관한 이 행사엔 43개 단체가 참여했다. 추모 행사는 코로나19 탓에 유튜브를 통해 진행됐다. 주최 측은 초에 불을 밝히고 지난 1년 OC에서 사망한 329명의 남성, 여성, 아동 홈리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많은 이가 엄연히 이름을 지닌 사람들을 ‘홈리스’라고 뭉뚱그려 부르며 동일시한다. 사망한 홈리스 전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것은 그들이 누군가의 아들과 딸, 부모, 형제, 자매, 남편과 부인이자 누군가의 친구, 이웃이었음을 일깨우는 일종의 의식이다.

명단을 살펴보니 한인도 1명 있다. 성이 김씨다. 이름을 알고 나니 문득 그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누구의 아들일까. 결혼은 했을까. 자녀는 있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처럼 큰 힘을 발휘한다. 말이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인질이 된 여성이 범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그리고 어린 딸이 있다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왜 굳이 이름을 알려주고 자식 이야기를 할까. 범인들이 자신을 이름 모를 인질이 아닌, 한 사람으로 더 나아가서 어린 아이의 엄마로 보아주길 원해서다. 인질을 인격체로 여길수록 범인들이 잔혹한 범행을 실행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홈리스를 평소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것은 로컬 정부의 홈리스 정책을 좌우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한다. 홈리스를 운이 좋지 않아 현재 거처가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동정심이 들 것이다. 불쌍한 사람으로 본다면 측은지심을 발휘할 대상으로 여길 수 있다.

한인사회엔 홈리스 돕기에 적극적인 단체, 개인이 많다. 오랜 기간 홈리스 사역에 앞장서온 목회자도 있고 식사 봉사에 나서는 교인도 있다.

어떤 이는 홈리스를 루저(loser)로 여긴다. 게으름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잠재적 범죄자나 사회악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홈리스를 이런 식으로 규정한다면 애초에 진심으로 그들을 도울 마음이 생기기 어렵다.

홈리스에 관한 개개인의 시각은 여러 이유에서 비롯된다. 막연한 인상, 부모의 가르침, 직·간접적 대면을 포함한 경험, 가치관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정 인물이나 사안을 보는 시각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그래서 애써 미화할 필요도, 굳이 낮추어 볼 필요도 없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나자렛의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갔을 때, 방을 구하지 못해 마굿간에서 묵었다.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이들은 구유에 누운 아기를 경배했다. 가장 높은 존재가 하찮게 여겨지는 장소에서 태어난 것은 그 자체로 많은 이에게 깨달음을 줬다. 무엇을 가졌느냐로 타인의 인생을 재단할 순 없다. 가진 것이 적다고 마음까지 가난한 것도 아니다.

한꺼번에 홈리스라고 부르면 거처의 결여만 강조될 뿐이다. 홈리스의 이름을 부를 때, 그들은 주소지가 없는 이웃 주민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어떻게 규정하고 부르느냐는 이렇게 중요하다.


임상환 / 부장·OC취재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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