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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68> 에스빠냐의 북미 탐험

에스빠냐인 소또는 1532년 잉카 제국을 정복한 삐사로의 부관 출신으로 잉카 제국 정복때 공을 세워 엄청난 부를 챙긴 자다. 에스빠냐 귀족 출신인 소또는 어렸을 때부터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1539년 600여 명의 병사와 100여 명의 하인 200여 마리의 말과 맹견을 앞세운 소또가 북아메리카 탐험에 나섰다. 먼저 템파 인근에 도착하여 아팔라치아 산맥 쪽으로 북상하면서 그는 수많은 인디언들을 살육하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하여간 식민지 경영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인간들이 에스빠냐인이고 두 번째는 물론 영국인들이다.

그후 소또는 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아칸소 등지를 탐험하면서 여러 인디언 부족과 조우하여 약탈 살육을 밥먹듯이 했으나 목표로 했던 금을 찾지 못한 채 역병으로 죽고 말았다.

1540년 소또에 뒤이어 에스빠냐 왕실의 북미탐험 허가를 받은 꼬로나도가 지금의 뉴멕시코 지역을 탐험했다. 꼬로나도는 300여 명의 병사와 900여 명의 인디오 짐꾼 1500여 마리에 이르는 말과 나귀를 이끌었고 4명의 프란시스코 수도원의 수사도 이들과 동행했다. 꼬로나도의 탐험대가 뉴 멕시코주를 탐험할 때 앨버커키에서 100km쯤 위치한 벼랑 위의 요새인 아코마를 발견했다. 이 인디언 요새는 거대한 절벽 꼭대기에 있었고 눈 아래는 아득한 사막이었다. 이 인디언 요새는 무려 60년 간이나 에스뺘냐 군대의 간헐적인 공격을 막아냈다. 에스빠냐군은 그간 거의 2000 명의 아코마 족을 살해하고 붙잡아 노예로 삼았으나 아코마 부족은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결국 이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뒤 라미레스라는 신부가 맨몸으로 그들을 찾아가서 알아듣게 타이르자 아코마 족은 비로소 개종하여 그리스도교인이 되어 항복했으며 아코마 부족은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다.



▶문의: (213) 381-0041, 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 : 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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