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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땡큐!!

이경애 / 수필가

한국에서 온 친구 부부와 워싱턴 DC 관광에 나섰다.

하루 일정으로 온 여행이라 우리는 서둘러 몇 군데만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먼저 백악관을 한 바퀴 돌아나오면 잔디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워싱턴 기념탑이 보인다. 그 기념탑에서 멀리 동쪽으로는 아름답고 웅장한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링컨 기념관이 보인다. 우리는 먼저 국회의사당 쪽으로 향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던 곳이다. 대통령 취임식을 보기 위해 그 넓은 잔디밭을 가득 채웠던 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았던 그곳이다.

우리는 링컨 기념관으로 이동해 잠깐 링컨 대통령 동상 앞에서 사진만 찍고 나왔다. 기념관 계단을 내려와 발길을 오른쪽으로 돌아 나오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으로 연결된다. 군장을 하고 우비를 입은 병사들이 V자 대형으로 전진하고 있는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적의 총구 향방을 알 수 없는 전선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드러내놓고 전진하는 병사들과 맨 뒤에서 한 손에 무전기를 들고 사방을 경계하며 따르는 통신병의 얼굴에서 극도의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길을 따라 오르던 중 우연히 도우미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내려오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몇몇 할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똑같은 빨간 티셔츠에 목에 참전군인 마크가 있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아마 어느 지역의 한국전 참전용사 단체의 행사의 일환으로 이 곳을 방문하는 중인 것 같다. 나는 다가가 한 할아버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 분은 여러 명의 가족이 함께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사람이다. 한국전에 참전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곁에 선 60대쯤으로 보이는 딸이 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1951년 한국전에 참전하였단다. 아버지는 이곳에 와 보고 싶어하셨다고 한다. 이제는 90세가 넘어 걸음이 편치 않으시단다. 나는 "당신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롭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고맙다! 고맙다!"라며 할아버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예상치 못한 한국인의 진심어린 감사의 말 때문이었을까? 얼핏, 그녀의 눈자위가 젖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목소리까지 울먹이며 내 이름을 먼저 물었다. 자신의 이름은 '쥴리'라 했다. 내 손을 꼭 쥐고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하시던 할아버지의 얼굴은 오히려 온화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선 나라, 총탄이 쏟아지던 전장에서 살아남아 지금 이 곳에 서 있는 그의 소회는 어떠했을까. 죽음으로 돌아온 수 많은 전우들, 또한 부상자들… 무섭고 두려웠던 그 격전의 시간들, 평생 잊을 수 없었던 그 전쟁이 다시 생생히 살아났을 것 같다. 벽에 부조되어있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눈은, 그들이 알지 못하던,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붙어있는 작은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 흘렸던 한국의 산하를 전진하고 있는 19명의 동료 병사들을 오래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수 많은 젊은 생명을 한국전쟁에 희생시켰을 뿐 아니라, 전(戰).후(後)의 피폐한 대한민국을 도왔다. 전쟁 중에 태어난 우리세대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미국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난 세대다. 밀가루와 우유가루, 초콜릿이란 것도 그 때 처음 맛보았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의 도움이 전란(戰亂) 후의 한국을 도왔으며, 서방의 앞 선 문물과 문화들을 접하는 계기가 되어 한국을 일깨웠다.

"땡큐!" 나는 깊은 감사의 마음을 그 곳에 남기고 돌아섰다. 전쟁을 보고 겪은 내 부모세대가 떠났다. 이제 우리세대가 떠나고 나면 우리의 후세들은 이런 사실들을 그대로 전해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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