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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에 '치과 생태계' 만들러 가요

의미 있는 '인생 후반'
토머스·리타 리 부부

치과의사 32명인 열악한 환경 보고 하나님 부름 받아
재원·인력 자체 확보 청사진 안고 '10년 이주' 결심
지속 가능한 전국 규모의 진료 시스템 만드는 게 목표


"7, 8년 전에 (목사인) 사촌 동생이 책을 줬어요. '하프 타임(Half Time)'이라는 책인데. 인생 전반은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뛰는데 후반은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성공보다는 의미를, 영원한 의미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라나다 힐스에서 오랫동안 '리딩 엣지 덴털(Leading Edge Dental)'을 개업하고 있는 토머스 리(55) 치과의사는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의미 있는 후반으로 가는 여정의 전환점은 밥 버포드의 '하프 타임' 말고도 또 있었다.

5년 전이 결혼 25주년이었다. 색다르고 멋지게 킬리만자로를 가자고 했다가 거부당했다. '왜 힘든 여행을 하냐. 편한 여행을 하자.' 연구를 해 사파리를 가자고 했다. 2주 잡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때 클로드라는 친구가 우리 교회(가든 교회)에 와서 간증을 했어요. 1994년에 르완다에서 학살이 있었잖아요. 그때 12살이었는데 살아남은 얘기를 했어요. 충격적이었던 게 대학생이 된 뒤 힘들게 살던 아이들을 돌보는 단체를 시작했대요. 하루는 꼬마가 도와달라고 오더래요. 그래서 보니까 자기 아버지를 죽인, 자기 누나를 강간하고 죽인 사람의 아들이었대요. 그 애를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고 공부를 도와주었다는 거예요. 감명받았어요. 이번에는 아프리카에 가서 이런 사람을 돕는 의미 있는 여행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한데 힘든 여행 싫다고 거부당했잖아요.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돌아올 때 아내가 그래요. 아프리카 고아들 돕는 선교 여행을 하면 어떻겠냐고. 깜짝 놀랐어요. 같이 간증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거죠. 너무 좋아서 흥분하는데 이것도 인간의 생각일 수 있으니 하나님에게 확인을 받자는 거예요."

집에 와서 TV를 보는데 전화가 왔다. 교회 리더였다. 여름에 2주 동안 아프리카에서 선교할 생각이 없냐는 거였다. "10분이 안 돼 하나님이 응답하신 거죠."

그렇게 5년 전 르완다로 단기 선교로 갔다. 가면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기도했다. '저를 이쪽으로 이끄시는 것 같은데 응답을 주세요.'

"르완다 인구가 1180만 명인데 치과의사는 32명이에요. 37만 명에 1명꼴이에요. 미국은 치과의사가 2000명에 1명꼴인데요. 치과의사 32명도 르완다 사람은 18명이고 나머지는 외국인이에요. 겉으로는 안 보이는데 지금도 학살이 상처가 깔려있어요."

그렇게 의료 선교를 했다. 아무 데나 접이 의자를 놓고 전기를 꽂고 치료했다. "여자아이를 치료하는데 소리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려요. 깜짝 놀랐죠. 아파서 우느냐고 물으니 통역자가 아니래요. 아이는 치료받으러 2시간을 걸어왔는데 해가 진 뒤에 다시 2시간 걸어갈 생각을 하니 끔찍했던 거죠. 르완다는 1년 내내 5시 30분이면 해가 지고 6시면 어두워져요. 해가 지면 정말 깜깜해요. 불이 없으니까. 그게 겁이 나서 혼자 운 거죠." 아내 리타씨가 교회 담당자에게 "차를 태워 데려다주든지 여기서 재워야 한다"고 고집했다.

마지막 환자는 성인 여자였다. "오른쪽 볼이 많이 부었어요. 3일 동안 밥을 못 먹었대요. 아프고 온몸에 염증이 퍼지고 열이 나니까. 애는 배고프다고 우니 젖을 먹였는데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였어요. 이 두 개를 뽑고 항생제를 주고 보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은 내가 여기 없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르완다에서 사망자의 15%는 사망의 직접 원인이 구강 질환이다.

이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사람을 살린 거잖아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구나. 예수님은 손을 얹어서 고쳐주셨잖아요. 손을 얹어서 축복해 주셨잖아요."

그때부터 1년에 1번씩 5년째 의료 선교를 했다. 내년부터는 의료 선교를 1년에 2, 3번으로 늘리고 내후년에는 집도 팔고 병원도 처분하고 아예 아프리카로 이사할 계획이다. 선교 훈련을 받고 2021년 1월이면 르완다로 삶을 옮긴다.

"치과는 손을 많이 쓰잖아요. 성경에서 예수님이 손을 어떻게 쓰셨나 봤더니 손을 얹어서 축복하고 치료해 주셨어요. 그래서 '히이스 핸즈 온 아프리카(His Hands on Africa·HHOA)'로 이름을 지었어요."

'하나님께서 르완다로 가기를 원하셨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확증해 주셔서 그 부르심에 가게 된' 인생 후반의 의미 있는 삶은 단순한 단기 선교를 넘어선다. 토마스·리타 리 부부는 HHOA를 공동 창설하고 웹사이트 hishandsonafrica.org 를 만들었다. 지난 해에는 첫 기금 모금 갈라 파티를 열었다. 올해도 10월 27일 UCLA 러스킨 콘퍼런스 센터에서 두 번째 갈라를 연다.

목표는 HOPE 덴털 센터를 세우고 지속 가능한 선교와 치료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수도 키갈리에 센터를 만들 계획입니다. VIP를 상대로 한 클리닉을 열어 상류층과 외국인을 치료해 재원을 확보하는 거죠. 한편으로는 르완다에서 5년제 치과대학 졸업생이 올해 처음 배출되는데 이들을 훈련시킬 겁니다. 다음 단계는 지역마다 커뮤니티 치과병원을 세우고 다음엔 이동 치과병원으로 더 후미진 곳에 들어가 치료와 선교 활동을 하는 겁니다."

VIP덴털 센터를 운영해 재원을 확보하고 트레이닝 센터와 덴털 랩을 세워 인력을 양성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전국에 서른 곳이 넘는 행정구역마다 컴패션 커뮤니티 치과병원과 이동 치과병원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계속 돈을 보내지 않아도, 사람을 보내지 않아도 자체 내에서 운영이 되는 거죠. 의사를 배출하면 그 의사들이 다시 의사를 배출하는."

이미 르완다에 하나밖에 없는 치과대학을 방문해 총장을 만났다. 르완다 최고의 치과대학이지만 미국의 개인병원보다 작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작년엔 학생 중 두 명을 뽑아 같이 일하며 트레이닝을 시켰다. 클리닉 부지도 이미 물색해 올해 몇 곳을 방문했고 기도하면서 결정하려고 하고 있다.



르완다 정부도 이들의 계획을 알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올해 방문 때 장관 두 명을 만났다. 치과병원을 따로 세우지 말고 행정 구역마다 하나씩 있는 병원에 들어와서 파트너십으로 일하면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되면 부지를 사고 건물을 지을 필요가 없다. 있는 건물에 들어가 기계 교체하고 트레이닝시켜서 활동하면 된다. 수도에서 40분 떨어진 디스트릭 병원에 갔는데 디렉터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한양대에서 2년 유학을 했고 불고기와 김치를 좋아했다.

"치과 병원이긴 하지만 의사는 없고 필링과 클리닝 하고 이 뽑는 테러피스트가 있어요. 모든 과목 중에서 치과가 제일 바쁜데 의사가 없어요. 디렉터는 메디컬 닥터고요. 기계도 겉으론 멀쩡한데 아무것도 작동이 안 돼요. 치료하다 침이 고이면 바닥에 있는 사발에 뱉고. 이러니 정부에서는 기계 교체하고 의사 트레이닝시켜주면 어떠냐는 것이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려면 첫 번째 지역병원이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이를 모델로 하나씩 다른 지역에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기계가 망가지면 끝이에요. 부품도 기술자도 없어요. 아프리카에서는 도요타를 사야 해요. 그래야 부품과 기술자가 있어요. 치과에서도 모든 병원에 똑같은 기계를 보내야 해요. 의자도요. 부품이 한 종류여서 기술자가 그것만 알면 되게. 그래야 해결돼요."

이들 부부가 계획하는 것은 특정 기간 불특정 다수를 돕는 것이 아니다. 재원을 확보하고 인력을 양성해서 한 나라의 치과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제가 생각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선교 콘퍼런스에 가니 선배 되시는 분이 똑같은 모델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몽골에서요. 메디컬 닥터이신데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성형외과 병원을 차리셨어요. 부자들 쌍꺼풀 수술 등을 하면서 거기서 나온 이익으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거죠. 그런 사례들을 듣고 확신을 갖게 됐어요. 그분은 앞서가셔서 1년에 1명씩 현지인이 이사로 들어와요. 조금씩 현지인에게 넘길 준비를 하고 계세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도 배워요. 언젠가는 다 주고 나와야죠."

정부 쪽도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보건부 장관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왜 내년에 오냐. 다음 달에 오면 안 되느냐"며 재촉한다. 치과 기공도 기술이 없어 케냐 등에 주문해서 가져온다. 그래서 크라운을 컴퓨터로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 아프리카 부유층은 다른 나라에 가서 수술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다른 나라에서 비행기 타고 올 수 있는 치과를 세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비행기 타고 와서 치료받는데 2주 뒤에 오세요 할 수는 없다. 2시간이나 하룻밤 호텔에서 머물면 크라운을 만들어 치료를 끝낼 수 있는 계획을 하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50대 중반. 미국 생활을 접고 르완다로 가면 사실상 은퇴하는 것인데 보통의 은퇴보다는 10년 빠르다. "선교는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거잖아요. 나는 좋은 부분을 드리고 싶어요. 지금이 피크잖아요. 30년 의사 경험이 있고 건강하고. 이럴 때 좋은 부분을 드리고 싶어요. 인생의 전성기를. 그리고 치과라는 게 몸이 힘들어요. 몸으로 하는 일이 많아서. 젊을 때 가야 활동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이들은 르완다에 국가 규모의 치과 생태계를 만드는 데 10년쯤 예상한다. 그 이후엔 무얼 할까. 걱정이 될 수도 있다. "미국에 살다 아프리카에 가보면 우린 너무 차고 넘쳐요. 10년 아프리카에서 살다오면 많이 변할 것 같아요. 필요한 것도 많이 단순화되고 원하는 것도 바뀌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도 많이 바뀔 수 있고." 아내 리타씨는 말한다. "하나님이 필요한 대로 채워주시겠죠."


안유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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