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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믿는 자의 가을은

"가을은 슬프다고들 한다. 가을바람이라든지 낙엽이라든지 하는 것이 우리에게 비애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벌레소리, 그 중에 밤새도록 머리맡에 씰씰거리고 우는 귀뚜라미의 소리도 어째 세월이 덧없음과 생명과 영화도 믿을 수 없음을 알리는 것같이 여름에 자라고 퍼져 싱싱하게 푸르던 초목이 하룻밤 찬서리에 서리를 맞아 축축 늘어지는 꼴은 아무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병창어'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네가 보통 생각하고 느끼는 가을이 담겨 있다.

"가을은 서글픈 계절이다. 시들어 가는 풀밭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서 유리알처럼 파랗게 갠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까닭 없이 서글퍼지면서 눈시울에 눈물이 어리어지는 것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감정이다." 이는 소설가 정비석의 '들국화'에 나오는 가을이다.

"가을밤은 왜 이렇게 길고 길까요? 울고 싶은 밤, 누구의 노래를 듣고 싶은 밤이외다"는 노자영 시인의 '슬픈 가을밤이고, "귀가 멍해지는 소음 속에서도 완전히 정지된 내면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나는 뼛속까지 내가 혼자인 것을 느낀다. 정말로 가을은 모든 것의 정리의 달인 것 같다."는 수필가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이어령 평론가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서 "가을은 전쟁을 치른 폐허이다. 그리고 가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침몰한다. 하나의 모반, 하나의 폭동, 들판의 꽃들과 잎과 열매와 모든 생명의 푸른 색채가 쫓긴다. 쫓겨서 어디론가 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은 그 자리에서 침몰한다"라고 가을을 쓰고 있다.



여기 기록한 글 말고도 가을을 소재로 한 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한 점이 그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물론 가을을 이렇게 비애적으로만 보지 않는 글도 더러는 있지만, 대부분의 글은 서글프고 눈물나고 쓸쓸하고 외롭고 잠 안 오는 계절로 가을을 묘사한다. 물론 이런 글들은 문예사조의 영향도 없지는 않아서 낭만주의적 감상성이 농후하게 배어 있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글은 곧 그 사람이다.

지금은 가을, 가을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서글프고 눈물나는 가을이어서는 안 된다. 인본적 감상에만 매어있는 가을이어서도 안 된다. 믿는 자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첫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계절이다. 분명히 가을은 감사의 계절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영혼의 추수기이다. 봉사와 수고에 대한 보수와 축복과 그 상급을 받는 계절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가난한 자를 돕는 계절이다. 내일을 위하여 양식을 모으는 때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잠자지 않고 엎드려 기도하며 죄에 대한 형벌과 세상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계절인 동시에 눈물로 자신의 삶을 맑게 닦아내는 계절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가을은 믿음으로 영혼의 눈을 뜨는 깊은 의미의 계절, 인생을 한층 더 깊고 넓게 사유하는 계절이다.

지금 우리는 이와 같이 절실한 가을을 맞고 있다. 믿음으로 맞는 가을이야말로 참으로 값진 순간이 아니겠는가.


최선호 / 목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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