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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패륜 공화국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영결식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정치라는 것이 때로는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인간의 존엄성과 명예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숭고한 일인지도 되새겨 보았다. 군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평생을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 진정한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었고 여야의 구분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 정적이었던 전직 대통령들이 번갈아 가면서 나와 고인에 대한 추모사를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부시, 클린턴, 오바마 등 전직 대통령 내외분들이 좁은 의자에 팔꿈치를 맞대고 나란히 앉아서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며, 때로는 미소지으며 때로는 귓속말로 담소하며 함께 고인을 떠나보내는 모습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런데 왜, 왜, 왜??? 한국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없는가. 아시아의 모범적인 민주국가라는 한국에서는 왜 정권이 바뀌기가 무섭게 전직 대통령들을 잡아 가두고 재판을 해야하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25년 징역형에 200억 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또한 78세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아픈 몸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다. 도대체 고령의 두 전직 대통령들이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그토록 중벌을 내리는 것인가. 그들이 살인을 했는가, 나라를 팔아 먹었는가. 아니면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시대를 '불의의 시대'로 규정하고 계속해서 적폐청산을 해 나가겠다고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공언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적폐청산이란 미명 하에, 법치라는 명분 하에 반대세력에 대한 숙청을 계속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이것이 법치이며 민주주의인가.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이라크가 핵개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판하여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중동지역 정세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부시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못들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 시 백악관 인턴사원과 성추문을 일으켜 미국의 국격을 크게 실추시켰는데도 퇴임 후 전직 대통령으로서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잘못을 저지르면 재임 중이라도 독립된 수사기관에서 철저하게 수사하여 끝까지 잘못을 파헤치되 본인이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면 어지간한 잘못은 관용으로 덮어주고 있다. 다수의 국민들이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뽑은 대통령은 나라의 한 축을 이루는 헌법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그에 합당한 예우와 존경을 받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정권이 바뀌면 전직 대통령의 공은 모두 지워버리고 과는 작은 것 하나 하나까지 시시콜콜 캐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내서 책임을 물리기에 혈안이 되어있지 않은가. 어쩌면 사람들이 그렇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도 없고 모질고 잔인하단 말인가. 이것은 적폐청산도, 법치도 아닌 패륜이다.

이런 패륜 현상은 나랏일 뿐 아니라 한인사회의 몇몇 단체들에서도 나랏일의 축소판처럼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단체장이 바뀌면 공명심이 앞선 후임자는 전직이 해놓은 모든 일을 부정하고 바꾸고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시며 근원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또한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배운 후 새로운 것을 알라 하였으니 과거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보다는 좋은 전통은 계승하면서 그 바탕 위에 새로운 것을 쌓아 나가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는가.

매케인 상원의원의 영결식장에서 본 화합과 일치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국의 정치권과 미국의 한인사회에 재현되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채수호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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