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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시편 읽는 시간

수동식 그라인더로 커피 갈기. 하루에 서 너 시간 책 읽기. 김치 담그기. 식빵 만들기. 삼시 세끼 집밥 해 먹기. 손바느질로 마스크 만들어 보기. 타인의 심장에 남아있는 추천 영화 보기. 영양제 챙겨 먹기. 식물 옆에서 아침 햇살 나란히 나눠 쬐기. 1일 1 감사로땡큐 노트 쓰기. 시편 읽으며 다윗의 심정 공감하기. 그윽한 눈빛으로 모종 바라보기.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의 반동으로 내 나름대로 하는 ‘사회적 가까이 두기’이다. 바느질하고 밀가루를 만지고 하는 원시적 최초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회적 압축 파일이 풀리길 기다리며, 메말라 바스락거리지 않게 시간과 나를 정교하게 세공하고 있다. 혼란과 고요를 동시에 받아들이고 순리에 적응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갖기까지 처음 한 달은 힘들었다. 신경성 코로나에 감염되었던 시간이었다. 〔〈【몸과 정신이 아팠다. 내가 어딘가 아프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정신적인 것도 행여 전염될까 두려운 시간들이었다. 】〉〕세상은 혼란했고, 누가 코로나에 걸렸다더라, 또 죽었다더라. 가까이에 와있던 죽음의 공포를 알코올로 비누로 닦고 또 닦았다. 바이러스가 심리전에도 강자임을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글을 쓸 수 없었고 책도 읽히지 않아서 처음엔 가벼운 소설을 읽었다. 또 시간의 과한 여백은 가끔은 나를 과거로 이끌어 뾰족하게 건드릴 때도 있었다. 온통 뿌연 우울 모드였다. 세상은 침묵하라고 마스크를 씌우고 미소를 감춘다. 시선은 팬더믹의 진원지를 향한 공포를, 애써 감추고 있다. 반대 극처럼 타인과 나를 밀어내는 파장이 오렌지빛으로마켓 바닥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다. 행여 그 거리감을, 몸이 기억하고 새겨질까 두렵다.

그 혼란 속에서 읽은 책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초반에 읽기가 지루하고 힘들었다. 작가도 인정했는지 ‘지루함을 견디는 자만이 자신의 책을 읽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중세 말에 신앙의 혼돈 속에서 하느님만이 절대적 존재였을 때,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결국 나도 시간과 지루함을 제물로 바치고 책을 다 읽었다. 수도원 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비밀을 알아내는 사람이 하나씩 죽어 간다. 잘못된 절대 신앙을 지키려는 자가 살인을 하면서까지 꼭 봉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 권의 책이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웃음 편이다. 지금 우리들의 마스크 속에 갇힌 그 웃음. 그것이다. 책을 다 읽고서 봉인 해제된 비밀의 문서를 손에 쥔 기쁨을 느꼈고, 세상의 혼란 속에서 살아야겠다는 묘한 동력을 느꼈다.



수묵화 같은 시간 속에서 색깔이 지니고 있는, 허영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오직 타인과의 나 사이에서만 존재감을 나타냈던 빨간 립스틱은 스스로 알아서 서랍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페르소나를 벗어버린 맨얼굴의 생활들에서 독소가 빠지는 묘한 행복감을 이젠 즐기고 있다. 맨손으로 만지는 밀가루가 해독제가 돼서 요리로 탄생한다는 것을 이 나이에서야 알게 된 것은 부끄러운 진실이다. 멈춘 시간은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것들을 기꺼이 꺼내 주었다. 작은 모종이 수다스럽게 성장하여 열매를 만들어내는 원시적 희망이, 마음속에서도 모종을 이식하고 함께 성장하는 농부의 설렘을어렴풋이 알게 됐다. 온 세상이 찬양하는 시편의 첫 구절은 ‘행복하여라!’ 이다. 웃음이 없는 행복은 없다. 중세 수도원에서 지키고 싶었던 그 웃음을,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이원경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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