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태종수 칼럼] 가래떡

며칠 있으면 설이다. 설날엔 떡국을 먹어야 한다. 내가 아주 어려서 어른들이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순진한 마음에 그 말이 무척 귀에 솔깃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이야 ‘떡국 안 먹고 나이도 안 먹는다면 떡국 얼마든지 안 먹지’ 하는 장난스럽고 실없는 생각도 해 본다.

어려서 설을 앞두고 엄마 따라 시골 떡방앗간에 가서 가래떡 뽑는 것을 처음 보았다. 두 줄기 하얀 가래떡이 기계에서 거침없이 쭉쭉 나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가래떡이 좋다. 요즘은 가래떡에도 색채 시대가 도래하여 형형색색 소위 무지개 가래떡이 눈길을 끌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전통적인 하얀 가래떡이다. 그 많은 떡 중에 하필이면 가래떡이냐면 나도 할 말이 있다. 떡이 무언가? 쌀을 주재료로 해서 만든 우리의 전통 케이크라고 할 수 있다. 요새는 퓨전 떡이니 개량 떡이니 해서 떡의 종류도 많고 일일이 이름하기도 어렵지만, 어떤 형태이건 무슨 재료를 더했건 떡은 쌀을 주재료로 해서 만드는 영어로 ‘rice cake’일 뿐이다.

가래떡은 멥쌀을 찌고 반죽해서 그냥 길게 뽑아낸다. 반죽할 때 소금을 약간 더할 뿐 다른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참깨니 설탕이니 잣이니 팥이니 하는 온갖 떡소를 야단스럽게 넣을 일이 없다. 보기 좋아지라고 특별히 디자인이나 모양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인절미 반죽처럼 힘들여 떡메질하지 않아도 된다. 가래떡이 기계에서 나오면 일정한 기장으로 쓱쓱 자르면 그뿐이다. 고물이 없으니 먹기에 편하고 고물을 흘릴 걱정이 없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그 맛도 담백하다. 희고 긴 가래떡은 순수하고 무병장수의 의미가 있다. 새해를 백지상태에서 깨끗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복도 명줄도 길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떡국은 설날 아침에 누구나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가래떡은 떡 중의 떡이다.

가래떡은 기계에서 뽑은 지 얼마 안 돼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할 때 그대로 먹는 것이 좋다. 갓 뽑은 놈의 따끈하고 말랑하고 쫄깃한 식감은 다른 어느 떡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나는 며칠 지나 딱딱해진 가래떡을 아궁이 잔불에 올려 시나브로 구워 먹는 것을 좋아했다. 겉은 약간 타고 속은 야들야들 부드러워 지면서 떡이 부풀어 올라 “피시 피시식” 소리를 내며 터지게 될 때 그 쫀득하고 바삭한 맛을 무엇에 비하랴. 이놈을 조청에 찍어 먹으면 완전히 끝내준다. 가래떡처럼 용도가 많은 떡도 없다. 간식뿐 아니라 떡국, 떡만둣국, 떡볶이, 가래떡 꼬치 등 무척 다양하다.



설날 떡국 한 그릇 못 먹는 신세는 외롭고 처량한 신세다. 청렴결백하여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으나 거문고를 타면서 세상의 근심을 잊곤 하였다는 신라의 재상 백결선생(百結先生, 옷을 백 번씩 기워 입었다는 데서 얻은 이름)의 이야기가 전한다. 섣달 그믐날에 아내가 이웃집에서 울려오는 떡방아 소리를 부러워하며 신세 한탄을 할 때 거문고로 떡방아 찧는 소리를 내어 아내를 위로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때 백결선생이 뜯은 거문고 소리가 후세에 전해져 대악(?樂, 방아타령)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곡식이 없어 설날 떡 한 그릇 만들어 먹을 수 없이 가난한 백결선생이 정말로 아내를 위로하려고 거문고를 탄 것일까. 이는 마치 몇 끼 굶은 사람 앞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구경만 하라는 식으로 실속 없는 일 아닌가. 그 아내가 현처였기 망정이지 웬만한 아낙이었으면 사람 열 받게 한다거나, 요샛말로 스트레스받아 못 살겠다고 했을 것이다. “위로 좋아하시네, 사람 약 올리지 마세요”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이치에 맞는 설명은 백결선생이 이웃집의 떡방아 찧는 소리를 듣고 마음을 가다듬어 방아타령을 작곡(?)했다고 하는 것이 어떨까.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