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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사람들] “시카고서 ‘삼국통일’ 이뤘어요”

시카고 일간지 역사 증인 권수길 장로

“60년대 말, 먼저 이민 온 누님의 영향으로 유학 올 뻔 했지만 가족의 헤어짐을 걱정하시던 아버님의 간곡한 부탁에 포기했죠.”

권수길(사진•78) 장로는 한양대 기계공학과 60학번으로 졸업 후 동진물산에 들어갔다. 그 후 영창피아노사 주조 공장 설치 계획을 맡아 일본 야마하 공장에 3개월간 연수를 다녀왔다. 일본어를 익히고 실제 현지 생활을 겪으면서 “일본이 이 정도 생활 수준이면 미국은 훨씬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초청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1975년 김포공항을 출발, 시카고에 도착해 플라스틱 공장에 취직했다. 밤 8시부터 이튿날 새벽 6시까지 일하는 고된 일은 6개월 후 끝냈다. 이후 매형이 하던 클락 길의 맛나당 그로서리를 돕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78년부터 시카고 중앙일보 창간 핵심 멤버로 참여했다. 공항에서 신문을 픽업해 주소 라벨을 붙이고 나중에는 로컬판 ‘판갈이’를 하면서 밤 10시, 11시까지 일을 했다. 휴가나 보너스도 반납하며 제작한 신문을 다운타운 중앙우체국에 가져다 줬다.



1987년까지 중앙일보서 일하다가 사표를 냈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야 하니 더 많은 수입이 필요했죠.”

시카고 남부 71가에 남성용 옷가게를 차렸다.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한 1996년 남부 비즈니스를 접었다.

세탁업을 물색하던 중 조선일보 공무국의 연락을 받았다. 3년을 일 하다가 동아일보로 제호가 바뀔 때 퇴사했다. 이후 던디 마켓을 인수, 3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한국을 떠날 때 세살짜리 아들(현택), 한살짜리 딸(현정)을 바라보며 “아이들 결혼은 반드시 한국 사람으로 해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는 그는 지금 ‘삼국통일’ 집안의 어른이 됐다. 공학도에서 진로를 바꿔 음악교육학과를 나온 아들은 트리니티 신학대에서 선교를 갔다가 일본인 여자 친구와 결혼했다. 딸은 남자 친구 성이 이씨라고 해서 안심(?)했는데 나중에 보니 중국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40년 이상 산 몰톤그로브 집에서 온 가족이 만나면 떠들썩하다. 색소폰을 즐겨부른다는 그는 “한국, 중국, 일본의 삼국 통일을 볼 수 있어서 좋다”며 웃는다.


James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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