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문학칼럼] 미니멀 라이프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영미권에서 미니멀 라이프의 열풍이 촉발된 것은 2010년 무렵이다.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가 “좋은 차, 큰 집, 넘쳐나는 물건을 가졌음에도 주 70,80 시간을 일하며 더 좋은,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일로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며 잘나가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TheMinimalists.com 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하며 그들의 여정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1년 만에 방문자 수가 월 10만 명에 달했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물론 동양에서도 일본의 정리의 달인 곤도 마리에를 빼 놓을 수 없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소유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에 힘입어 일상에서의 불편한 것을 끊고 버리고 떠난 심플한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미니멀 라이프와 관계된 각종 출판물과 인터넷 카페, 동호회,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인테리어 업체 등등이 생겨나며 멈출 수 없는 소유욕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나 또한 미니멀 라이프를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옷장과 부엌 찬장, 신발장, 창고 등을 열어보며 버릴 것이 없는지 눈을 반짝이곤 했다.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책에서는 정리에도 원칙이 필요하다며 의류,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 순으로 정리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옷부터 정리했다. 겨울이 5개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춥던 인디애나에서 6년이나 살았던 덕에 겨울옷이 많이 있었다. 물론 휴스턴으로 이사 올 때 많이 도네이션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스키장가면 입어야지, 중부나 동부로 놀러갈 때 입어야지 하면서 남겨둔 두꺼운 겨울옷들은 부피도 커서 제일 먼저 처분했다. 사이즈가 2부터 시작되는 옷들... 지금은 밝힐 수도 없는 사이즈를 입고 있는데도 맘먹고 한 6개월 운동하면 다시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옷들을 다시 고이 접어 잘 넣어두었다. 사람마다 집착하는 품목이 있다. 누구는 가방에 눈이 뒤집히고, 누구는 시계에, 누구는 선글라스에, 누구는 그릇에, 누구는 신종전자기기에... 그중에 나는 신발이다. 누군가 왜 굳이 신발이냐며 묻는다면 나는 자신하며 대답할 수 있다. ‘제 발은 다 컸기에 옷처럼 사이즈가 들쑥날쑥 할 확률은 거의 없고, 또 PTO에 맞는 신발 하나씩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래서 나의 애정이 듬뿍 들어간 신발을 정리하는 게 힘들었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려고 했는데 모든 신발들이 다 설레었다. 그나마 눈물을 머금고 열 켤레를 추려 굳윌에 도네이션 했지만 가끔씩 나에게서 버려진 신발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도대체 의류에서 책으로 넘어가질 않으니 정리의 원칙 따위는 이제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큰아이가 6살에 미국으로 건너 왔으니 한글로 된 어린이 전집이 많았다. 미국에 살면서도 한글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어서 몇 박스씩을 이고지고 다녔는데 사실 돌아보면 일주일에 한 시간도 한글 책을 읽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막내가 태어나고 혹시나 막내가 쓸까 싶어서 또 버리지 못하다가 이번 여름에 뚝 반을 떼어 과감히 교회의 한글학교에 도네이션을 했다. 나머지 반은 막내의 초등학교에 할 참이었다. 아무튼 미니멀리즘을 통해서 나는 버리는 것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그런 사람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허리케인 하비는 내가 고민하던 모든 것을 버려주었다. 굳이 신발장을 열고 이걸 버릴까 저걸 버릴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한번 폼 내고 신었던 신발을 비롯해서 신고 흙 한번 밟지 못한 신발들까지 모조리 버려주었다. 그리고 굳이 열어보지 않으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수많은 거라지의 박스들도 깔끔하게 날려주었고, 이제 지겨워서 바꾸고 싶던 가구들도 말끔히 부셔주었다. 뭐, 여기까지는 눈물 조금 흘렸지만 괜찮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곤도 마리에도 매일 마지막으로 언급한 추억의 물건들까지 손을 대다니...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매년 학교에서 찍은 아이들의 사진들, 비싼 거금을 들여 만든 아이들의 돌 엘범, 액자들, 성적표들, 생일 때 주고받은 편지들 그리고 여행 다니며 모은 냉장고 자석들 등등, 눈으로 보기 전에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거!’라고 손에 들고 보면 그때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는 모든 추억의 물건들이 모두 사라졌다. 급한 마음에 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 두었지만 단전까지 밀려 내려오는 허무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니멀라이프를 살고 있다. 남은 짐을 싸서 임시 거주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처음에는 정말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만을 가지고 생활했다. 불편은 했지만 그럭저럭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간이 늘어나면서 필요해지는 것이 많아졌다. 아마도 사라진 것들이 많았기에 필요한 것도 더 많아진것이겠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과 불편하다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도 가능만 하다면 괜찮은 것도 있지만 불편한 것을 감내하더라도 불가능하다면 불편함과 편함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래서 불편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미니멀리즘이라... 무조건 버리는 게 능사는 아닌, 조금 불편해도 삶이 가능한 생활일테지. 물론 불편함을 참을 수 있는지 없는 지는 누구의 강요도 아닌 본인의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버릴 거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사람들에겐 왠지 모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의도적으로 버리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버릴 것은 전혀 없고 오히려 하나라도 한 푼이라도 아쉬운 사람들. 아마 그들은 일단 버려놓고 정 아쉬우면 또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취미생활이나 문화생활쯤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치부해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오지랖이 태평양이라는 말을 남편에게 듣겠지만 신제품 개발자들이나 기업의 마케팅 전략가들에겐 미니멀 라이프라는 문화가 또 하나의 해결해야하는 과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의도치 않는 미니멀라이프를 살고 있는 나는 오히려 버리는 데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무작정 문화를 쫒기 위해 버릴 것을 찾는 어리석은 행동보다 나보다 더 많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처분한다는 마음으로 미니멀리즘을 대하고 싶어서이다. 내 중요한 추억의 물건들을 앗아간 하비가 준 의외의 교훈일지도 모르겠다.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