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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오늘도 살아있는 ‘엘비스 프레슬리’

뉴욕으로 가는 길에 테네시주 멤피스를 들렸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났다.
‘1953년 여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한 허름한 벽돌 건물 앞. 기타를 어깨에 멘 청년이 서성이고 있었다. 한참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눈치다. 마침내 무엇인가 결심한 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찾아왔냐는 여직원의 물음에 그는 자비로 음반을 하나 녹음하고 싶다고 대답했다.’(네이버 캐스트 발췌)
‘Hound Dog’의 들썩거리는 리듬과 ‘Love Me Tender’의 부드러운 목소리, 로큰롤의 왕이라 불리며 세상을 지배했던 사나이. 바로 그였다. 엘비스 프레슬리, 전설과 우상은 그렇게 시작됐다.
로큰롤이란 1950년을 전후하여 미국에서 생겨난 음악 장르다. 블루스와 컨트리, 흑인 가스펠이 적당히 섞여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왕’이라는 별명처럼 엘비스는 로큰롤의 역사에서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다. 그 장르의 폭발적인 인기를 선도한 최초의 슈퍼스타였다. 빌보드 차트 10위권 안에 36곡, 1위에 17곡을 올렸고, 미국 내 1억장 이상, 전 세계 10억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다. 엘비스의 기록에 버금가는 음악인은 비틀즈뿐이다. 엘비스의 흑인 창법은 한 때 ‘흑인 음악을 훔친 백인가수’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에 그나마 엘비스의 인기 덕분에 흑인 음악인의 운신 폭이 더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올해 스물다섯이 된 필자에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존재는 ‘한 때 유명했던 가수’ 정도다. 어쩌면 이날의 인연이 아니었으면 나는 그를 평생 ‘유명한 가수’ 정도로 담아두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백악관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개인 주택이라는 그레이스 랜드(Grace Land)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20년 동안 살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집이다. 멤피스의 관광지도를 따라 들른 그 곳에서 우리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깔끔하게 무스를 바른 머리, 붉은 셔츠와 가죽조끼에 화려한 액세서리로 자신을 치장한 그 남자에게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흔쾌히 촬영을 승낙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엘비스로 소개하며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낭만적이고 로망에 가득한 음성, 나는 그에게서 엘비스를 볼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그의 노래는 끝이 났고, 나는 그와 헤어지기 전 엘비스 프레슬리가 정말 살아있는지 물었다. 서투르고 진지한 내 영어에 그 남자는 껄껄 웃었다. 함께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마음속에는 항상 엘비스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곁에서 언제나 그가 들려주는 멜로디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문득 한용운님의 시가 떠올랐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다. 우상은 앞으로도 침묵하겠지만, 누군가의 우상이 된 그는 영원히 그를 사랑한 사람들 곁에 살아있을 것이다.




김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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