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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 654] 새벽, 숲으로 간다

밤새 올렸던 난방으로 후덥지근하고 무거워진 공기를 벗고 이른 아침 밖으로 나간다.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면 배달되는 조간신문의 유취(油臭)도 좋지만 싸아한 겨울공기를 마셔보고 싶기도 해서다. 깨끗한 공기가 폐 속으로 스미면 살아있다는 확신이 온다. 뿌연 하늘을 배경으로 온몸을 드러내고 서있는 나무들, 아무 것도 걸친 게 없는걸 보면서 “아! 가볍겠다, 너희들” 하고 중얼거린다. 나무들이 알아들었을 것 같다. 달이 빙그레 웃고 있다.

캐나다의 캐펄라도 숲 공기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우리 집 공기도 좋다. 앞뒤로 서있는 많은 나무들이 태초의 당신처럼 변함없이 맑은 산소를 불어주기 때문이다. 생명의 부활을 보여주는 봄나무, 무성한 녹음으로 폭양을 막아주는 여름나무, 찬란한 환희의 가을나무를 젊을 땐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겨울나무도 좋다. 내공의 의미가 내게 더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일까?

다 내려놓고 안으로, 안으로 가득해지는 의연한 모습이 편안하다. 아무리 외로워도 누군가를 찾아 나서지 않는 나무, 그리움과 아픔을 속으로 새기는 나무, 비바람에 흔들리다가도 바로 설줄 아는 나무, 그런 나무들 쉬어야할 때가 되면 가진 것 모두를 내려놓으며 사람들도 마땅히 그래야한다고 일러주는 것 같다.

어릴 적에 보았던 만화경(Kaleido scope)이 생각난다. 지금도 아이들 장난감 파는데 가면 구할 수 있으려나. 눈에 대고 돌리면 살아 움직이듯 바뀌던 예쁜 색과 무늬들. 이 나이에도 가끔은 세상이 만화경처럼 신기하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들로 꽉 차있는 것 같이 생각될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밟고 다니는 흙이 수 천만 년 된 것이라든가 흙속에 박힌 자갈의 나이가 20억 살 쯤 되고, 내가 끼고 있는 반지속의 다이아몬드가 젊으면 10억 살, 늙은 건 33억 살짜리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세상은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와 르와젤은 다이아몬드나 진주라면 죽어서도 끔찍했을 것 같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이아몬드 목걸이 때문에 단두대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던 불쌍한 왕비, 파티에 걸고 가려고 단 한번 빌려 쓰고 잃었다가 그걸 변상해주기 위해 평생 일해야 했던 가짜 진주목걸이와 르와젤, 땅 속에 묻혀 있거나 조개 속에 숨어 있거나, 이런 보석 애기도 나는 재미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밝고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 그 휘황찬란한 빛은 수백만 년 전 폭발하여 사라져간 이름 모를 별들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건 또 얼마나 신기한가. 과학자들은 우주에 수많은 행성이 있지만 인류같이 지적인 생명체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핵전쟁으로 그들이 전멸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와 반대의 꿈을 꾼다. “네 심장 가까운 곳에 운석처럼 묻히고 싶다”고 노래하는 시인이 있나하면 시인 임창현은 나무를 사람으로 호명한다.

하느님은 두 개의 사람 만드셨다/ 하나는 걸어 다니며 살게 하고/ 하나는 서서 살게 했다/ 걸어 다니며 사는 사람은 인간이고/ 서서 사는 사람은 나무다/ 사람은 하루 종일 땅 위 걸어 다니고 / 나무들은 하루 종일 하늘 걸어 다닌다//(중,하략) 그 나무사람들의 넉넉한 가슴 그림자 가득한 숲, 겨울 공화국으로 간다. 저만치서 봄내음이 난다.

김령/시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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