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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여행 속으로] 아름답고 맛있는 여행…행복감이 절로

Ⅱ부 동유럽 3국 여행/사람, 음식 그리고 예술
3. 다시 찾고 싶은 헝가리 부다 페스트 <끝>

공연 극장 찾는 일은 피곤했지만…힘찬 율동의 민속춤 잊을 수 없어
마테성당·켈러트 언덕 풍경 압권…소시지·햄 그리고 맥주의 즐거움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는 버스로 약 3시간. 체코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 거리의 약 반 정도였으나 오스트리아의 물가 때문인지 오히려 더 비쌌다. 그러나 부다페스트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택시운전수 둘이 달려와서 자기 차를 타라고 가방을 서로 뺏으려 했다.

그런데 헝가리에서 첫 번째 실수를 했다. 요금을 따지고 정한 다음에 타는 것을 깜박했다. 그래서 그만 30유로를 지불했다. 나중에 보니 약 15유로면 충분했다.

호텔에서 여장을 풀기 바쁘게 나는 로비로 내려가서 헝가리 민속춤을 공연하는 극장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항상 헝가리하면 경쾌하고 힘찬 프란츠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을 연상하며 또 거기에 맞추어간 장화를 신고 힘찬 율동의 민속춤을 춘 것을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호텔에서 표 예약을 하고 나니 공연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시내 관광도 할 요량으로 호텔을 나서 전차를 탔다.

그리고 시내의 중심지인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을 기린 루스벨트 광장에 내렸다.

그런데 공연극장은 유명한 곳일 것이고 쉽게 찾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나의 큰 실수였다. 이 사람은 이리가라, 저 사람은 저리가라 하는 바람에 지쳐있는데 마침 경찰차가 서 있었다. 그 경찰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마침 길가에 서있던 택시운전수를 불러 물어본 것 같다. 이 택시 운전수 오케이 오케이 하더니 우리를 태운 후 다뉴브강 건너 다시 말해서 페스트 신시가에서 구시가인 부다 쪽으로 다리를 건너갔다.

그러더니 좀 작은 고궁 같기도 한 건물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그런데 왠지 조용했다.

텅 빈 홀에 한 직원이 앉아 있다. 표를 보이고 좀 들어가서 건물을 구경하자니 놀라면서 입장권을 가리키며 설명을 한다. 어떤 요일은 이곳에서, 어떤 요일은 페스트 어디에서 하는데 오늘은 여기가 아니니 빨리 다른 곳으로 가보란다. 그날 정말 택시타고 이곳저곳 헤매느라 꽤나 혼이 났다. 그러나 헝가리 민속춤 구경으로 고생하고 지친 몸은 충분한 보상을 받은 듯 했다. 정말 너무 좋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어제 길에서 너무 시간을 보냈기에 오늘은 마음대로 내리기도 하고 타기도 하는 관광버스를 타기로 하고 호텔을 나섰다. 또한 호텔 여직원에게서 헝가리의 특별하고 맛있는 메뉴를 적어 주머니에 넣는 것도 물론 챙겼다.

다시 루스벨트 광장에서 내려 관광버스를 계약했는데 판매안내원이 20대 초반 쯤으로 꽤나 유창한 영어실력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래서 가장 궁금했던 중의 하나인 헝가리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 물어 봤다. 사실 나는 헝가리는 한나라 황제가 미녀 왕소군을 바쳐야할 만큼 강성했던 흉노족이 종국에 한족에게 쫓겨 서쪽으로 도망가서 세웠다고 들었으나 얼굴이나 몸매를 보거나 그들이 프란츠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에 깔려있는 힘찬 민요에 맞추어 추는 춤을 보건데 과연 흉노족의 후손인지 납득이 잘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청년은 꽤나 역사를 아는 듯 했다.

헝가리에는 신석기, 청동기 시대가 있었고 유물도 발견되나 다뉴브강 이북의 독일과 마찬가지로 켈트족이 기원전부터 수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단다. 그러다가 AD100년경에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로마의 문명, 다시 말해 원형극장, 도로 교량, 배수시설 유물로 추정컨대 인구 3만 명의 시대가 열렸다 한다.

그 후 시대가 흘러 로마의 융성함이 기울 때 즈음해서 흉노족의 침입이 있었다 한다.

그 당시 로마제국의 유럽세계에서 동쪽의 흉노 놈들이 나타나는 곳이라고 불리던 것이 그냥 굳어져 나라 이름이 헝가리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그 후 7세기쯤 유목민인 마자르족이 게르만족과 동맹을 맺고 로마를 쫓아내고 나라를 세웠고 그 후 아르파트가 지휘하는 7개의 마자르족이 부다페스트에 정착, 오늘의 헝가리를 세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나 또 자기가 알기로도 국가의 원천을 마자르족이 세운 나라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로마교황 칙령으로 왕이 인정받고 10세기에 기독교로 개종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헝가리의 역사는 7세기부터라고 해야 한다는 단서를 부치기는 했다.

또한 17세기 150년간 터키의 정복 시절도 언급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역사를 세계의 눈으로 보지 않고 우리 눈으로 보면서 한국의 형제국이니 어쩌니 하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 같고 문제로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를 덴마크 지배시대, 독일기사단 지배시대, 스웨덴 지배시대 등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흉노 놈들이 나타나는 곳이란 이름을 그대로 나라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역사인식이 우리의 한의 역사 인식, 과대포장, 우리 눈으로만 보는 왜곡된 역사관을 생각하면서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관광버스의 첫 번째로 우리는 페스트 국립 오페라극장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 뉴욕의 42번가라기보다는 서울의 대학로 같은 곳을 어슬렁어슬렁 거렸다.

연극 극장, 좀 작은 규모의 오페라 공연장, 발레공연 등의 건물들이 모여 있었고 조그마한 카페에서 극작가, 연출자쯤 돼 보이는 사람들이 뭔지 모를 열띤 논쟁으로 떠들썩했다.

분위기가 좋아서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주문했고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여자가 차를 서브했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다뉴브강 건너 부다 쪽에 갔을 때 그 아름다움은 말이나 글로서 다 설명이 안 된다. 그저 집사람이 사진 찍기에 너무 바빴다고나 할까. 특히 성당의 언덕에 있는 마테성당(Matthias Church)과 그 주변 그리고 겔러트 언덕(Gellert Hill)의 풍경은 압권이었다.

그래서 또 한번의 실수(?)를 했다. 아주 멋진 길가 오픈 카페에 앉아 호텔에서 적어준 종이를 내밀면서 음식 오더를 했다. 하나는 돼지만두에 그래비(gravy)를 부었다할까. 그리고 또 하나는 닭 스튜(chicken stew) 같은 것이었다. 맛은 그저 그랬고 물 한 병에 맥주 한 병이 전부였다. 그러나 계산서를 보니 60달러가 넘었다. 비싼 자릿값을 치룬 것 같았다

집사람이 갤러트 언덕 경치구경에 너무 빠져, 언덕 위에서 사진 찍으랴 구경하랴 하는 바람에 다뉴브강에서 배타는 것은 돈을 주고도 못 탔다. 그리고 다시 페스트로 돌아와 국회의사당 건물을 돌아보니 너무 지친 것 같고 점심에 바가지를 쓴 것 같아 옆에 시청 홀 상가를 구경하다가 소시지ㆍ햄 전문집에서 약간의 소시지와 빵 그리고 호텔 앞에서 헝가리 맥주를 사서 호텔방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모두 5유로도 안 들었는데 아주 맛있었고 훌륭한 저녁이었다.

호텔방에 누워 있다. 피로하다. 그러나 행복한 피로다. 그리고 꼭 다시 오겠다며 다짐하면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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