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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235> 흑인 노예 잔혹사8

이렇게 사제가 이름을 지어주고 나면 설교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노예 사냥꾼이 바로 화덕에서 낙인을 꺼내 노예들의 얼굴이나 몸에 화인을 찍었다. 이게 바로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16세기 후반부터 몇 세기 동안 대서양의 상어들은 먹을 걱정을 놓고 살았다. 노예선이 떴다 하면 기다리던 상어떼가 노예선이 아메리카에 접근할 때까지 줄곧 뒤를 따랐다. 힘 들일 것 없이 배만 쫓아가다 보면 배고플 때쯤 던져지는 흑인이 꼭 몇 명 내지 몇십 명씩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당시 항해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식수였다. 물은 부피 때문에 많이 실을 수도 없었고 또 상온에 오래 두면 상했다. 그래서 먼저 먹을 맹물 외에 포도주를 탄 물을 싣고 다녔는데 평소보다 날씨가 좀 더 더우면 물은 곧 떨어졌고 그렇게 되면 노예들에게 갈 물이 없었다.

식수난으로 인한 최악의 케이스를 보면 1782년 영국 배인 리버플호의 선장 존은 배에 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쇠사슬에 묶여 있던 노예 133명을 그대로 바닷속에 밀어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더구나 노예선은 자신들이 항구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노예선이 항구에 닿기만 하면 그 배에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온갖 악취가 온 도시를 뒤덮어서 누구나 노예선이 도착한 것을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이럴 정도였으니 운송 도중 노예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선원들도 많이 죽었다.

평균 두 달 동안의 항해에 노예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건빵과 옥수수 감자 약간의 물이 다였다. 튼튼하기가 쇳덩어리 같은 놈도 배 밑창에서 이것만 먹고 두 달을 버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물이 차례가 오지 않아서 도중에 목 말라 죽는 노예도 많았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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