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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 인생 남진우씨의 인생항해] "바다도 전쟁터였다"

삶을 3단계로 잡았다. 첫 번째는 배(선박)를 알고,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배를 몰 줄 아는 것과 배 안에서 살아보는 것,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는 게 최종 목표다. 1, 2단계는 이미 이뤘다. 남진우(57)씨는 '해(海)숙자'다. 그의 집은 롱비치 바다. 요트가 텐트이자 침낭이다. 남씨는 지난 3월 31일 시애틀로 70일간의 항해에 나섰다. 단독 항해였다. 원래 계획은 아니었지만 '나라고 못할쏘냐' 용기가 치솟았다. 바다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출항하자마자 파도가 쳐서 앵커(닻)가 빠지는가 하면 자동항해(auto pilot) 장치는 무용지물이 됐다. 거대한 바다에서 칠흑 같은 밤은 혼을 빼앗았다. 마음 한 켠에 생각했던 고요한 사색의 항해는 없었다. 배가 하늘로 치솟다가 다시 곤두박질 그리고는 물이 갑판에 홍수 터지듯 배를 덮어버리는 일이 한 달 이상 반복됐다. 낭만은 육지에서나 그리는 것이었다. 바다는 전쟁터였다.



배 이름은 선주의 야망이다. 남씨의 선박명은 '이그나텔라'(ignatella). 천주교 신자인 그의 세례명(ignacio)과 아내의 세례명(stella)을 합한 것이다. 20대 젊은 날에 만난 아내와는 30여 년이 흐른, 지난해 결혼했다. 사랑의 완성도 야망이 될 수 있다.

배는 2012년 당시 9만여 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메릴랜드에서 육상으로 배를 운반하면서 2만여 달러가 추가됐다. 동부 해안에서 미대륙 남쪽으로 파나마 운하를 건너 캘리포니아로 오기에는 비용이 너무 들고, 그럴만한 선박 운행 경험도 없었다. 배는 세로 37피트, 가로 12피트, 무게는 3만 파운드를 넘는다. 배는 세일링 요트(sailing yacht). 돛이 있어 바람을 타는 배다. 강력한 엔진의 힘으로 쏜살같이 달리는 파워 요트와는 구별된다.



그래서 요트 '이그나텔라'호를 몰기 위해서는 바람을 알아야 한다. 항해는 바람을 다스리는 일이다. 갑판 위에는 여기저기 돛과 도르래, 매듭, 밧줄이 놓여 있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다. "다 나름의 역할이 있습니다. 돛 하나, 밧줄 하나가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거죠."

남씨는 19살인 1979년 이민왔다. 부산 대연동이 고향. 초기 LA한인타운에 자리를 잡고, 페인트부터 야간청소, 카펫클리닝, 버거집 청소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이민 연차가 붙자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부모와 함께 LA에서 마켓을 오픈했고, 오렌지카운티 지역서 카페와 노래방을 운영했다. 잘 나갔고 돈도 꽤 벌었다. 그런데, 누구는 돈 버는 재미만 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남씨는 재미가 없었다. '이게 아닌데…'.

'이그나텔라'호 조그만 갑판에서 밑에 선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4걸음으로 돼 있다. "머리 조심하세요!" 고개를 수그리고 안에 들어가자 냉장고와 개스레인지가 있는 부엌, 화장실, 작은 거실 순으로 쭉 이어지다 선수 바로 아래 침실이 있다. TV, 컴퓨터, 통신기 등도 곳곳에 비치돼 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다 있죠. 배에서 잉여는 '짐' 아닙니까?" 땅에서는 움켜쥐려는 소유욕이 넘실대지만, 바다에는 큰 파도 한 방이면 모든 것이 날아간다.

잘나가는 비즈니스맨이었던 남씨는 나이 40줄에 들어서기 전 장사를 접는다. 재미없고 내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그는 10대 때 미술가 또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전국대회서 수상도 많이 해 특기생으로 미대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오면서 삶은 바뀌었고, 기억은 그대로였다.

1998년 라구나비치에 있는 4년제 아트 스쿨에 입학했다. 타고난 재주 덕인지 아트 스쿨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학에서 개최한 아트 쇼마다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갑자기, 세일링 요트는 어떻게 앞으로 나가냐고 물었다. "절대로 요트는 바람을 뚫고 못 갑니다. 바람이 부는데 직각으로 들이댔다가는 그 자리에만 있는 셈이죠." 남씨는 돛이 살짝(10~15도) 비틀어져 있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요트는 일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지그재그로 가는 거죠. 서너 개의 돛이 바람에 토라져 있듯 약간씩 틀어져 있으면서 바람을 맞아야 앞으로 가는 겁니다." 그가 한마디 더했다. "세상의 수많은 고난과 장애물을 정면으로 뚫고 나가려는 게 인간사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산티아고 노인을 통해 '사람은 파멸 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돛은 파멸 당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고 봅니다."

남씨는 아트 스쿨 졸업 후 미술학원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답답했다.

예술적 소양에 더해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 남씨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배(카약)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 화폭에 그려왔던 바다에 나가자고 마음 먹었다. "혹시 그 기분 아세요? 물 위에 둥둥 떠서 하늘과 바람을 품에 안는 느낌. 남들보다 빨리 가려고 노를 휘젓지 않아도, 무언가를 얻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이 넉넉해져요."

그의 인생 1막이 시작된 것이다. 배 만들어 보는 것. 5년여 수없이 나무를 깎아내고 다듬었다. 밤을 새고 나무와 씨름한 것도 여러 번. 톱밥 세상 속에는 합판, 렌치, 전기톱 등 손때묻은 공구가 즐비했다. 뻣뻣한 나무를 적당히 구부리고, 평평하게 하기 위해 그의 손은 망치처럼 거칠어졌다. 그래도 '나 아닌 내가'가 돈 버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배를 만들면서) 생각만 조금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평온해요. 물 위에 떠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요. 눈 앞에 보이는 드넓은 자연 앞에 나의 걱정은 점보다도 작은 먼지에 불과할 뿐이에요. 제일 큰 위로죠."

"노를 젓다가/ 노늘 놓쳐버렸다…비로소 넒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시인 고은의 시집 '손간의 꽃'중에서

3막 목표는 '이그나텔라'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 도착하는 거다. "요즘 북한과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는데 북한 원산에 가고 싶어요. 가능하면 스폰서를 구해 그 항해기를 방송에 내보내고 싶습니다. 드론을 사서 공중에서 요트가 파도를 헤쳐나가는 모습도 담고 싶고. 물론 공포와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겠지만, 바람을 다스리는 법을 더 배워서 꼭하고 싶습니다."'요동치는 폭풍우는 잔잔한 미풍이 다스린다'는 이치를 깨달은 남진우는 '캡틴'이다.


◆요트를알고싶다면

미주한인요트클럽(Korean American Yacht Club·회장 남진우)이 정기 회원을 모집한다. 남진우 회장은 "미국 내에서 요트를 즐기는 것이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아직 한인들에게는 요트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이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한인들의 요트의 저변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KAYC는 요트 운행법과 구입 등 세일링 요트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정기적으로 요트트립과 다양한 수상스포츠 이벤트를 진행한다.

가입 관련 모임은 오는 28일 오후 3시 롱비치 쇼어라인에 정박된 남 회장의 배에서 있다.

▶문의:(714)924-0428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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