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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지키고·깨고·열고·닫아라

일흔 노장인 도현 스님, 그의 지리산 토굴을 방문한 어느 언론인과 차담에서 하신 소참내용이다.

"스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대뜸, 불교의 오계(五戒)가 뭐냐고 반문하면서, 편 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나간다.

"산목숨을 함부로 해치거나 죽이지 마라/ 주지 않은 남의 물건을 가지지 마라/ 삿된 음행을 하지마라/ 거짓말을 하지 마라/ 술 마시고 취하지마라" 다 세니 주먹이 된다.



"이 주먹을 그냥 꽉 쥐고 있으면 뭐가 될까? 조막손이지. 저 창을 열지도 못하고 닫아 놓기만 하면 뭐가 될까?" "그야 뭐, 벽이 되겠지요."

"그렇지, 바로 벽.창.호! 그 벽창호가 안 되려면 닫을 줄도, 열 줄도 알아야 되는 거라. 뗏목이 강을 내려가는데 한쪽 강가에 걸리면 못 가는 거지. 가운데(中道)로 가야 목적지에 닿는 거라."

예화를 한마디로 이르면 '지범개차'가 된다.

절대적 윤리도덕은 없다. 그것의 가치관과 관점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어서, 불교는 윤리도덕을 지키되, 얽매이지 않는다. 계율도 지범개차의 도리에 의해 운용될 수 있다고 본다.

지범개차(개차법)의 지(持)는 받은 계를 지키겠다는 결의이다. 범(犯)은 불가항력적 파계로 참회가 따라야 한다. 개(開)는 방편을 연다는 뜻이다. 한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거짓말을 해서라도 살리려는 의지 같은 것이다. 방편으로 파계하는 것이다.

차(遮)는 계를 범하는 것을 막는다는 뜻이다. 개(開)와 관련하여, 어떤 방편도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차라리 닫아 버리라는 주문이다.

개차법은 파계를 용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범계가 타인을 돕거나 생명을 구호하려는 일이라면 극악한 행위가 아닐진대, 파계로 보지 않고 참된 계율의 실천으로 보려는 것이 그 근본 취지이다.

개차법은 타인을 배려하려는 자비심에서 출발해야한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파계행이 되거나 혹독한 지탄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어떤 선택이 진정한 이타이고 자비인지 지혜로서 분별하여, 계율을 열고 닫음에 걸림이 없어야한다.

개차법을 오용하여 막행막식하면서 걸림 없는 무애행이라며, 스스로 면죄부를 주거나 자신의 허물을 합리화하려 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결국 계를 지킨다는 것은 계의 올바른 뜻을 지킨다는 것이지, 계의 자구에 얽매여 자구대로 고지식하게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개차법은 한 쪽에 치우쳐서는 올바른 수행이 될 수 없다는 중도사상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지.범.개.차 "계는 지킴으로서 지키며, 파(破)함으로써 지킨다. 계는 파함으로써 파하며, 지킴으로서 파한다."

musagusa@naver.co


박재욱 법사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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