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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한국전 피해 미주 이산가족 사연 소개

평양~시카고 2대에 걸쳐 가족 찾아
결국 세상 떠난 자식들과 재회 못해
"개인 문제 아닌 미주한인 전체 문제"

한인 이산가족 사연이 전면에 걸쳐 소개된 28일자 월스트리트저널 A섹션 지면.

한인 이산가족 사연이 전면에 걸쳐 소개된 28일자 월스트리트저널 A섹션 지면.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전 때문에 헤어진 미주한인(코리안아메리칸) 이산가족의 슬픈 사연을 전면에 걸쳐 상세히 소개했다.

28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평양에서 시카고까지: 북한의 가족을 찾는 한 평생 이야기(From Pyongyang to Chicago: Lifetimes Spent Looking for Family in North Korea)'라는 제목으로 2대에 거쳐 한국전으로 헤어진 두 자녀를 찾는 한인의 스토리를 소개했다.

지난 1950년 평양의 김금섬씨는 전쟁이 나자, 다섯 자녀 중 11세, 7세, 5세의 세 자녀와 대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하지만 대동강을 건너던 중 배에는 세 자녀 중 11세 조영환(80)씨와 김씨만 타게 됐다.

김씨와 조씨가 옷가지와 생필품을 배에 옮기는 동안 북한군의 총성이 울렸고, 배는 두 자녀를 두고 강가를 떠났다.



조씨는 "임종까지도 어머니는 강가에 남겨진 자녀들을 두고 온 것을 자책했다"며 "가방을 옮기는 대신 자녀들부터 옮겼어야 했다"며 후회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가 북한에 남겨둔 형제를 찾아달라고 마지막 부탁을 했다"고 전했다.

모친 김씨는 남한에서도 지속적으로 북한에 두고 온 두 자녀를 찾기 위해 사람을 보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모친의 유언에 따라 조씨는 2대에 걸쳐 헤어진 형제를 찾았다.

1960년대에 시카고로 도미한 조씨는 전기공으로 살면서 미국 내 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활동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으며, 북측에 편지 작성, 관련 단체 가입 등의 노력을 했으며 슬하의 두 자녀도 활동에 참가하게 했다. 다만 과거 수 차례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을 때도 미주 한인들은 대상에서 제외돼 형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 미시간주의 심장전문의이자 또 다른 이산가족인 박문재씨의 도움으로 북한 가족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두 동생들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남동생의 부인에게서 답변을 받았는데, 전쟁 당시 강가에 버려진 동생들은 이웃에서 거둬 키워줬고 이웃들이 이사를 가면서 어머니 김씨가 보낸 사람들이 찾을 수 없었다는 것.

남동생의 부인은 남동생의 사진을 보내며, "어머니 김씨가 일평생 느꼈을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김씨의 일화를 소개하며 이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했다. 신문은 "조씨는 북한에 이산가족이 있는 10만 명의 코리안아메리칸들 중 한 명"이라며 "이들 모두가 전쟁으로 인해 뼈아픈 가족사를 겪었고, 지금까지도 가족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은 (이산가족들에게)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고, 한인 활동가들은 이산가족에게 의사소통의 창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물거품이 됐다"고 덧붙였다.


박다윤 기자 park.dayun@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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