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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부끄러운 의학계 인종차별 역사

대학 연구소장으로 있는 작은 딸은 공립 중고등학교가 컴퓨터 교육을 공평하게 인종차별 없이 실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로 미시시피주 출장을 다녀왔다. 백인과 흑인들이 사는 동네가 아직도 분리되어 있고 빈부의 차이는 현저했다고 한다. 딸은 14살 때 흑인이기 때문에 부당하게 납치·살해된 에멧 틸을 기리는 기념관을 돌아 보았다고 한다. 한 백인이 에멧 틸의 동상을 훼손한 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었다.

2월은 ‘흑인 역사를 기리는 달’이다. 조선 독립 항쟁 기념일인 삼일절도 지났다. 인류의 평등이 실현 되지 못해 일어났던 사건들을 되돌아 보는 때다.

400년 동안 25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유럽, 중동, 미국 등에서 노예로 겪었던 역경과 인간이 평등하다는 법적 선포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인종차별은 변형된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인권 운동은 공식적으로 1968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공명 주택 법안’을 서명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었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법의 제정과 집행에는 시행착오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을 금하는 행정명령은 1948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대에 이미 내려졌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거쳐 인권 운동이 있었고 미국의 법은 인종의 평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인종차별의 관습은 바로 개선되지 못했다. 인체 실험 ‘터스키기 실험(Tuskegee Experiment)’이 가장 극명한 예다. 흑인 소작 농부 매독 환자 399명을 1932년부터 1972년까지 치료도 하지 않고 관찰만 했던 악명 높은 실험이다. 미국 정부와 의사들은 매독을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399명 중 128명(32%)은 매독으로 죽었고, 40명(10%)의 배우자들이 전염됐으며 19명의 아이들은 선천성 매독을 갖고 태어났다. 74명(19%)만이 실험이 끝난 1972년까지 살아 있었다.



미국은 과테말라인들에게도 유사한 실험을 했다. 또한 정부 지원금으로 흑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의도적인 방사선 방출 시험을 했다.

의사 자격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의사(약 60%)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선서를 하지 않아도 ‘의학의 윤리’에 대한 지침은 다를 바 없다. 의사들은 정치적 암살자로 고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앞서 말한 인체 실험의 앞잡이가 된 사람들은 의사들이 아니었던가. 어윈 새츠라는 젊은 의사와 피터 벅스턴이라는 예방의학 연구원이 이 같은 사실을 폭로했지만 묵살됐다. 결국 미디어에 실상을 터트리게 된 후에야 죄악은 세상에 알려졌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몇 안되는 생존자들과 자손들에게 국가를 대표해서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인간의 고통과 목숨을 놓고 타협하고 있는 의사들이 있을지 모른다. 의사가 되기 전에 먼저 참된 인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니카 류 / 암방사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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