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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형광등 언니

나는 어느 모임에서든 나서서 리드하는 것을 딱 질색한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과 만남을 선호한다. 젊은 사람들이 하라는 데로 따라 하는 것이 편하다. 가자는 곳으로 가고, 먹으라는 데서 먹는, 그냥 따라만 잘하면 된다. 여기저기 다녀봐도 다 거기가 거기고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굳이 싫고 좋은 것이 별반 차이 없다. '아무래도 상관없다'가 나의 대인관계 대응 방법이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과 만남은 내가 앞장서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나이 많은 언니들은 예전과 달리 아는 것이 많다. 유튜브 덕분이다. 은퇴하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인지 끊임없이 온갖 것을 챙겨준다. 그러니 안 만나면 손해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공원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았다. 우리는 누웠다. 등에 배기는 느낌도 없이 편하다. 바람은 내 몸을 감싸듯 살랑거리고 먼 하늘엔 뭉게구름이 그림을 그린다. 바야흐로 초가을로 접어든다. "천국이 따로 없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할렐루야! 아예 내가 먼저 교회 열성분자인 두 언니가 "교회 가야지"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못을 박았다. 그리고 재빨리 두 언니를 위해 평상시 전화기에 저장해 놓은 웃음 보따리를 풀었다.

오랜 친구 사이인 두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서 한 할머니가 말했다. "바깥어른은 잘 계신가요?" "지난주에 죽었다우. 저녁에 먹을 상추를 따러 나갔다가 심장마비가 왔지 뭐유." "저런!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뭐 별수 있나. 그냥 시장에서 사다 먹었지."



한 언니는 깔깔 웃었다. 평상시 5초 느린 언니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예전, 선생 시절 교단에 서서 강의하며 아이들 눈을 쳐다보면 알아듣는 아이와 못 알아듣는 아이를 구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교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구나.' 감탄했었던 초짜 시절이 기억났다.

"언니는, 못 알아들었지?" 하니까. 그제야 눈치챘다는 것이다. 계속 저장해온 다른 웃음 보따리를 풀면서 느린 언니가 따라오는가를 살펴야 했다. 빨리 알아 듣는 언니는 돌아가는 상황 대처를 잘 하며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재탕한다며 카톡 해달란다. 그러나 5초 언니는 느린 주제에 눈치 없이 초를 친다. "그거 뽀빠이 이상용이 했잖아." 5초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그러나 쌓이고 쌓이면 어떻게 될까?

시선을 돗자리 꽃무늬로 돌렸다. 돗자리 문양이 있는 듯 없는 듯 곱다. 내가 바닷가 모래밭에 깔고 눕는 침대보와는 완전히 질과 격이 달랐다. 시골집 대청마루 위에 깔린 돗자리에 누워 뒤뜰 감나무에 달린 주홍색 감을 졸린 눈으로 쳐다보던 그 시절도 천국이었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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