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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나부코

안문자(한국 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가을 색이 물들어 수채화 같은 도시에선 클래식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는 가는 곳마다 예쁘게 생긴 모찰트의 얼굴이 걸려있고 모찰트의 귀에 익은 음악이 흘렀다. 식당에도, 식품점에도, 옷가게, 기념품 가게.....어디나 모찰트의 초상화는 여기저기에서 웃으며 자기가 지은 감미로운 곡을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다.

여행자들도 분위기에 젖어 조용히 구경하는 것 같다. 장사꾼들의 수단이 빤 한데도 고상해 보인다. '죽기 전에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는 한 번 가 봐야 되지 않겠남?' 평생의 소원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행 이야기만 나오면 노래를 불렀다. 과연 그곳은 예술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준다고 자랑하듯 음악과, 그림과 조각, 그리고 꽃과 와인과 맥주와 소세지가 듣던 대로 낭만과 함께 풍요로웠다. 그곳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과 품위를 선사하고 있었다. 딸 부부와 함께 우리 넷은 모찰트에 젖어 유리잔을 높이 들며 '클래식이여 영원하라!'를 외쳐댔다.

음악회장으로 밀려드는 음악 애호가들의 흥분된 멋쟁이들 속에서 두리번거리던 나는 '우리는 지금 이곳에'.....를 즐기려고 '여기가 어디지? 오~비엔나로구나!' 자꾸만 확인했다.

수준 높은 비엔나 국립 오페라단의 나부코(Nabuco)는 가슴을 조여들게 하는 전율로 온 몸을 감싸 안았다. 클래식이 사라진다고? 천만에. 괜한 기우였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에는 청중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이 오페라야말로 본고장에서 감상하고 싶은, 평생의 소원인 사람들이 많을 게다. 나도 그랬다. 아, 나부코....과연 소름이 돋았다.



베르디의 나부코는 4막 오페라다. 이 오페라의 크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3막의 "노예의 합창"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게다. 너무 아름다워 가슴을 파고든다. 나부코는 구약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다. 포로가 된 유대인들을 괴롭힌 왕으로 사랑과 결투, 권력에 대한 야심과 회개, 용서가 깔려있다. 유대인들의 시련과 신앙의 승리가 줄거리인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던 그들이 종교적 탄압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애국을 노래한다.

나는 이 오페라를 감상하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설교가 생각났다. 6.25를 겪은 후 1.4후퇴 때 대구로 피난 온 우리 가족이 제일 교회의 수용소에 있는데 전도사를 구하는 교회의 초청으로 젊은 아버지가 선보이는 설교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설교 제목은 "바벨론 강가에 주저앉아"(시편 137편)였다. 아버지는 자주 울먹이며 설교를 하셨다.

어렸던 나는 설교의 내용은 몰랐지만 피난민들의 슬픔을 성경의 이야기로 하시는 구나~했었다. 내가 보아도 아버지가 설교를 너무 잘 하셨다. 수용소에 있던 수 백 명의 피난민들도 교회로 올라와 훌쩍이며 설교에 은혜를 받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 나 혼자만의 감회에 젖었다.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피난민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북한을 떠났다. 그들이 부르짖던 기도는 포로가 된 유대인들의 노래와 무엇이 다르랴.

나부코.....참 이상도 하지. 전혀 무대장치가 없었다. 무대 전체는 안개에 잠겨있고 의자 한 개와 두 어 개의 방석이 놓여있을 뿐이다. 음악의 변화와 강도에 따라 안개가 짙어졌다 옅어졌다 했다. 휑한 무대지만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무슨 뜻이 숨어 있는 듯, 색다른 분위기와 멋을 풍기고 있었다. 또한 의상은 완전히 요즘의 옷이다. 나부코 왕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었고 합창단의 의상도 여자는 롱 드레스, 남자는 긴 바지에 와이셔츠나 티셔츠를 입었다.

이런 오페라의 의상은 처음 보았다. 영화나 인터넷에 나오는 합창단은 노예들이 입었던 그 시대의 옷과 노예의 상징인 팔지, 발지들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무대장치, 의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를 내던지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뉴욕 메트로포리탄 오페라단의 실력에 자빠질 뻔 했는데.....한 수 위인 것 같다. 음악이, 사람이 표현 할 수 있는 소리가 이처럼 완벽하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오페라를 감상하며 내가 살아 존재한다는 감사가 절로 나왔다.

짧은 여행이 아쉬웠다. 다시 말하지만 물건을 사고, 먹고 마실 때까지 들려오던 감미로운 모찰트의 음악은 들뜨기 마련일 것 같은 분위기를 고상하게 만든다. 그곳은 팝송이나 재즈는 없었다. 젊은이들이 차를 몰며 왁작대는 그들의 음악 소리도 없었다. 맥주나 와인 잔이 부딪쳐 대는 촛불사이에도 오로지 모찰트다. 모찰트의 음악으로 온 도시를 에워싼 듯 했다. 구경 할 곳이 너무 많아 짧게만 느껴졌던 여행은 한 순간의 꿈처럼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2013년, 비엔나의 가을은 아름다웠고 음악은 영혼을 울리며 나를 흔들었다. 아, 비엔나의 나부코!
음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행위이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상한 품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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