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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법' 생각보다 가까운 데 있었다

토론토 중국계 식료품 주인 무죄 판결
현지 사회 이민자 상식 인정한 쾌거

절도범을 잡아 넘기려다 되려 폭력행사 및 강제구금 혐의로 형사 기소된 토론토 중국계 식품점 주인 데이비드 첸(David Chen) 씨가 29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17개월의 마음 고생을 접고 생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다시 평범한 식료품 주인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마치 이소룡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이후 따옴표는 실제 인물들의 말임).

청운의 꿈을 품고 한 아시아인 젊은이가 태평양을 건너 온다. 대도시 한 귀퉁이에 작은 식품점을 열고 두 자녀를 훌륭히 키워낼 희망만으로 하루 20시간의 중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 년을 벌어야 돌아오는 것은 고작 최저생계유지비 정도. 버는 것보다 도둑맞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매번 경찰에 신고해보지만 살찐 백인 경관이 느릿느릿 나타나기까지는 서너 시간. 이미 도둑이 보란듯이 해 먹고 사라지고 난 뒤다.

어쩌다 일찍 출동한 경관이 백인 좀도둑과 맞닥트려도 고작 경고 몇마디에 놔주고 만다. 그 좀도둑은 한 두시간 뒤에 다시 와 노렸던 물건을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 때마다 젊은이는 한 통 속으로 놀아나는 백인들을 보며 “칼로 가슴을 천갈래 찢어내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그러던 어느날 참다 못한 젊은이가 들고 일어선다. 눈 앞에서 자신이 피땀으로 장만한 물건을 들고 나가는 상습범을 가로막고 돈을 요구하자 “네 나라로 꺼져버려 XX야”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이에 발끈한 젊은이가 도둑을 붙잡아 밧줄로 묶고 차에 쳐 넣는다.

그리고는 경찰을 부르려는데 다른 때라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경관이 어느새 쏜살같이 나타나 도둑이 아닌 젊은이 손에 수갑을 채운다.

황당한 나머지 평소 시원찮은 영어가 더욱 안 나오고 그 사이 백인 도둑은 “생명의 위협” 운운하며 젊은이를 모함한다. 젊은이는 결국 형사범의 누명을 쓰고 재판장에 서게 된다.

공판에서 근엄한 표정의 검사는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감히 야만인 같은 행동을 하느냐는 식으로 젊은이를 꾸짖고 형사처벌을 내려줄 것을 판사에게 청구한다.

이에 맞선 변론인은 이 나라가 선량한 시민으로 살고자한 한 젊은 이민자의 꿈을 훔쳐갔다면서 피고인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형법이 보장하는 '시민 체포권'을 발휘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공판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세인의 관심은 커져가고 사안은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번진다. 법원 밖에서는 소수민족의 상권을 보호하는 데 등한시해 온 경찰을 성토하는 이민자와 절도범의 인권도 보호돼야 한다는 백인 인권주의자들이 팽팽히 맞선다.

정치인들도 나뉘어 시민의 재산권과 인권 중 무엇이 먼저냐를 놓고 연일 시끄럽다. 하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공판 마지막날 담당판사가 쥐고 있다.

판사는 공판이 시작되기 전 재판장을 가득메운 관람인들을 향해 경고 한다. “이 법정은 극장이 아니다. 어떠한 아우성과 환호도 용납치 않겠다.” 판사는 그러나 자신 스스로가 이번 사건을 “헐리우드 영화 대본”으로 봐줄 것을 제안한다.

“본인은 본 사건을 이민자가 성실히 생계를 유지해가던 도중 이 사회의 불순한 자에 의해 어떻게 기만당하고 서툴기 짝이 없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어떻게 유린당하는 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본다.” (중략). 피고인은 “이 나라 사법제도가 실패한 민간치안을 스스로 메우려했던 프랑크 카프라 영화에 나오는 의로운 민간인 치안대원”이며 석탄 갱도 안에서 먼저 죽어 광부를 구하는 “막장 안의 카나리”같은 존재다.

판사는 젊은이에게도 구금하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폭력을 행사했다고 훈계함을 잊지 않은 뒤 그를 모든 혐의에서 풀어 준다. 법정 안은 순간 숨을 멈추고 판사가 문 밖을 나가기까지만을 기다린다.

문을 닫고 나오는 판사는 그 너머에서 터져나오는 환호성을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The End.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본 이 이야기는 이민자들에게 캐나다의 법이 생각보다 가까운 데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민살이의 고단함을 털어놓는 말 중에는 현지인들의 “납득이 가지 않는 뻔뻔함”,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적반하장격의 행동”이 자주 등장한다.

"분명 자기 실수로 차 사고가 나 사람이 다쳤는데도 나중에 불리하게 작용할까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하는 이 사람들을 보면 정내미가 떨어진다"고 한 한인은 토로했다.

잘못을 저지른 자를 옹호하고 드는 현지의 법 또한 이민자의 '울화병'을 돋구는 요인 중의 하나다. 사회상식과 통념이 달라서 그렇다고 치부하기에는 실질적 피해도 만만치 않다.

BC 한인실업인협회 한 관계자는 "현행법상 가게 안에서 물건을 주머니에 넣어도 의심할 수 없고 문을 열고 나가야 절도죄가 성립된다"면서 "뒤쫒아 나가기 어려우니 그저 눈 뜨고 당하는 셈" 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외딴 곳에서 그로서리를 운영하던 한 회원이 "절도범을 잡았지만 오히려 자기를 모함했다고 범인이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녀 그로서리 매상이 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가게를 팔고 나왔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이번 챈 씨의 재판 결과는 그동안 이런 식으로 '캐나다 상식'에 눌려 살아왔던 이민자의 가슴을 통쾌히 뚫어 줬다.

'이민자는 이 사회를 모른다. 그저 여기 사람 하는 데로 따라 살아라'라고 강변하던 현지인들에게 그 사회의 큰 어른이 그들도 틀릴 수 있음을 일깨워 줬기 때문이다.

토론토 썬지는 첸 씨의 용감한 행동이 "이 사회가 얼마나 상식이 결여됐고 균형감각을 잃은 채 걸어왔는 지를 잘 보여줬다"면서 "첸 씨는 그런 면에서 세간의 영웅이다"라고 평가했다.

각 신문사 웹사이트에는 "어처구니 없는 재판으로 낭비한 혈세가 과연 얼마냐"는 힐난조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고 두 명의 연방 하원의원은 상점 주인이 도둑을 손수 잡는데 용이하도록 형법 개정안을 상정해 놓은 상태다.

밴쿠버 중앙일보=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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