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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

어디선가 귀에 익은 소리다. 귀를 기울여보니 냉장고 뒤편 어딘가에서 들린다. 귀뚜라미가 둥지를 튼 게다. "귀뚤 귀뚤 ~링링…" 녀석의 소리는 타일 바닥과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 변하더니 부엌 안을 쉬지않고 맴돈다. 울음을 멈추게 하려 냉장고 문을 급히 열었다 닫아 보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거나 밝은 불빛을 갑자기 벽 뒤로 비춰보며 요란을 떨어도 끄떡도 않는다. 오히려 확성기를 덧댄 듯 소리는 더 크게 울려 퍼진다.

왜 밤마다 소리공연을 펼치는 것일까? 잃어버린 짝을 찾기 위해서라면 굳이 아무도 없는 냉장고 뒤에 몸을 감추고 밤새도록 그리 할 리는 없을 터, 분명 내가 알지 못할 무슨 사연이 있을 듯싶다.

녀석은 가을이 깊어가자 한 해를 돌아보며 힘겹던 순간을 되새기며 안타까운 한을 터뜨리는 것인가. 아니면 낙엽같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밤새 오열하는 것인가. 밤잠을 설치며 삶을 고뇌하고 속마음을 마음껏 표출해 울어본 적이 없는 나와 비교하면, 녀석은 훨씬 깊이 있는 생을 살고 있는 것도 같다.

"귀뚤 귀뚤~ 링링…" 밤마다 지속되는 울음소리가 매일 나의 영혼을 세뇌시키는가 싶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조금씩 귀뚜라미로 변해 가고 있었다. 땅 위에 사는 녀석은 갈색으로, 나무에서는 녹색으로 변하는 귀뚜라미는 주변의 빛과 온도에 따라 빛깔과 체온이 바뀐다고 한다. 그것은 삶의 상황에 따라 영혼의 색깔과 온도까지도 변화시키는 나와 닮았다.



또 두 더듬이로 주변을 살피듯, 나도 예민한 오감의 더듬이로 주위의 공기 흐름을 가늠하며 그것과 맞추며 살고 있다. 게다가 귀뚜라미가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며 싸울 때나 상대방을 유인할 때나 먹이를 구할 때의 울음 소리가 다르듯, 내 영혼에서 나오는 소리도 순간의 감정에 따라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뀌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귀뚜라미가 두 날개를 비벼서 고운 소리를 만들 듯, 나도 순한 영혼의 실을 한 가닥씩 뽑아 가로실과 세로실을 고르게 엮어 수필이라는 한 편의 삶의 직물을 짜내고 있다. 게다가 귀뚜라미가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는 잡식성이라면 내 글의 글감 역시 무엇이라도 가능하다. 그런가하면 녀석이 날개를 비벼대어 나오는 소리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듯, 나도 영혼의 실로 짜낸 수필로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녀석은 청청한 가을밤을 찬미하다 거기에 취한 나머지 한 줄 한 줄을 소리내 풍요로운 가을 수필을 지어내는지도 모른다. "귀뚤~ 귀뚤 링링…" 동네의 풀밭에서, 나무 밑 낙엽 사이에서 써 내려가는 귀뚜라미의 수려한 문장들. 상처받기 쉬운 영혼처럼 쉽게 다칠 수 있는 녀석이기에 부드럽게 다루어야, 서정적이고 운치 있는 문장으로 고운 수필을 지어 나갈 수 있으리라.

현실적인 계산을 앞세우느라 진지하게 삶을 사유하고 성찰하지 못하는 나, 언제 한번 귀뚜라미 같은 순수한 열정으로 밤새워 인생을 고민하며 소리 내어 울어 본 날이 있을까. 싸한 이 가을에는 세속적인 욕심과 쓸데없는 집착을 비우고, 순수한 열정으로 삶을 노래하는 지고지순한 한 마리의 귀뚜라미로 태어나면 좋겠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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