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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고종명

많은 철학자와 목사님들이 인생은 외로운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태어날 때도 혼자 태어나고 죽을 때도 혼자 죽는다고 합니다. 사실 태어날 때는 쌍둥이도 있고 해외 토픽에 보면 16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말이 있으니 태어날 때는 혼자가 아닐 수가 많이 있지만 죽을 때는 한 침대에서 같이 숨을 거두는 일이 거의 없으니 죽을 때는 혼자 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누리는 오복 중에 고종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리에 누워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유언하고 가족들의 전송을 받으며 가는 것이 고종명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사람이 불안하고 무서우니 가는 사람 옆에서 위로해주고 전송해주어 가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임종일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장 폴 사르트르도 그의 마지막 날 호스피스에 혼자 들어갈 때 그렇게 불안해하고 반항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 고종명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종명을 오복의 하나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버지·어머니·장인·장모님의 임종을 못 지켰습니다. 부모님들에게 잘 가라는 전송을 못 하고 불효자가 되어 일생 마음에 한이 되었습니다. 사회가 발전될수록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는 일이 힘이 들어 집니다. 부모님들이 요양원에 계시다가 운명을 하시는 일도 있고 병원의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임종하시는 일도 많기 때문입니다. 장례식도 점점 간소화하여 운명을 하면 다음 날 화장을 하고는 몇 달 후에 추모행사를 갖는 것이 유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돌면서 자식들이 임종도 못 하고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부모님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님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는 확진 통보를 받으면 곧바로 방역팀에서 부모님을 병원으로 데려가고 입원한 동안도 격리병실이나 중환자실에 면회도 못 하고 운명을 하는 데도 가족이 보지 못하고 곧장 화장터로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돈이 있고 가족들이 힘이 있는 사람이면 영상으로 환자가 운명 하는 것을 보여 주는데 그것이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바이러스 백만분의 일 밀리미터도 안된다는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생활을 파괴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예배나 공연도 보지 못하고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 포옹하지도 못하게 했으며 결혼식과 장례식도 못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서로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만치에서부터 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중증이라고 판단이 되면 살아 있는데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들 그리고 사회에서 격리가 되고 혼자 죽음의 침대로 끌려가고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끼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중국과 이란, 뉴욕, 브라질에서는 그 많은 죽음을 장례라는 인간의 마지막 존엄도 지켜줄 수가 없어 냉동차에 실어다가 사람들이 오지 않는 섬이나 벌판에 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수백명을 한 구덩이에 묻어 버린다고 합니다. 아무리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그러니 고종명이 큰 복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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