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쉽게 살기로 했다. 젊고 섹시(?)하고 휘황찬란하게 종횡무진 앞만 보고 달리던 무소의 뿔 아닌, 쿨(Cool)하게, 세련 (Sleek)되고 너그럽게( Generous) 살기로 인생 판도를 바꿨다, 그랬더니 모든 게 편해졌다. 더 가질려고 아웅다웅 다툴 일 없고 안 될 일에 목숨 걸고 안간힘 쓰며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혼자 잘난 척 하다 코 깨지는 사고도 발생하지 않는다. 생긴대로 놀고 내키는데로 산다. 앞장 서 내세울 일도 없고 안 알아준다고 넋두리 부릴 일도 없으니 만사가 무사태평이다. 남보다 더 예쁘고 잘났고 잘 산다는 사고의 비약을 쇄신하니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는 끝나고 세상이 공평무사해졌다.

요즘 하늘도 올려다 보고 땅도 품으며 산다. 하늘이 이토록 변화무쌍하게 시시각각 바뀌는지 몰랐다. 새벽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일기예보 점검하고 비가 올 것인지 아닌지 확인한다. 더위에 꽃들이 지치지 않도록 물 주고 텃밭에 웅크린 채소 걱정을 한다. 예전엔 어떤 멋진 옷을 날씨에 맞춰 입을까 걱정했다. 날씨가 맑거나 흐리거나 번개가 치고 폭우가 내려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순례자가 순례길에서 흑사병(페스트)를 만났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흑사병이 “바그다드로 5천명을 죽이러 간다”고 대답했다. 되돌아오는 길에 흑사병을 다시 만났는데 “5천명을 죽이러 간다더니 왜 3만명이나 되는 무고한 생명을 죽였느냐고 따져 물었다. 흑사병이 “약속 한데로 5천명만 죽였는데, 나머지는 두려움에 질려서 스스로 죽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매일 걱정 근심만 하는 사람은 늘 걱정 근심거리만 생긴다. 대충대충 살면 대충 살다 죽는다. 세상살이가 노력한 만큼 이루어진다면 무슨 걱정 있을까. 노력해서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많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 같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건강. 행복. 사랑. 가족. 이웃. 친구. 빛나는 태양. 별빛. 무지개. 아침이슬. 소슬바람. 빗소리. 아이들 웃음.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들의 날개 부딪히는 몸짓. 그대의 휘파람 소리.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이 많은 축복에 감사하며 사무친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진짜 부자로 산다.

파노라마(Panorama)는 실제 경관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하는 회화 장치다. 야외의 높은 곳에서 실지로 사방을 전망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사생적 (寫生的) 그림을 둥근 돔형의 벽면에 설치해 놓고, 그 앞면에는 그림 속의 형상에 융합하는 입체모형과 가설물을 설치하거나 조명 등을 이용하여 중앙의 관람자로 하여금 장대한 실제 경치 속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게 한다.

굴곡과 고비가 있는 스토리를 얘기할 때 ‘인생의 파노라마’, ‘감동의 파노라마’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눈물겨운 격동의 파노라마가 없는 인생이 있을까. 나이가 사람을 편하게 한다. 나이 때문에 억울해 하지도 않고 청춘을 돌려받을 생각은 하지 않겠다. 목마르게 살았던 어제를 인생의 피노라마에 담고 차분히 필름을 돌려 보리라. 남은 시간도 흘러간 시간처럼 소중하게 공책의 빈칸에 채워 넣고, 예쁜 꽃잎 따서 책갈피에 끼워두는 것 잊지 않고, 별똥별 떨어지면 눈물 방울 떨어트리다가 소녀처럼 방긋 웃기도 하고, 다람쥐 재주 부리다 나무에서 떨어지면 까르르 까르르 웃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고독하고 아름다운, 찬연히 빛나는 날들로 남은 인생의 파노라마를 채워보리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