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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세기 만에 제자리 찾는 대사관

1975년 12월 어느 토요일, 당시 충남 예산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 중이었는데 미 대사관에서 치러지는 연례 외교관 시험에 응시하기 그곳을 방문했다. 대사관 구내식당에서 진행된 이 날 시험의 감독관은 젊은 미국 외교관이었다. 그는 우리 수험생들에게 “이곳은 새 청사가 지어질 때까지 사용하는 임시건물”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험에 합격했고 1978년 국무부에 들어가 1983년 한국으로 돌아갔다. 광화문이 내려다보이는 미 대사관 사무실에서 한국 정치 관련 업무를 다뤘다. 대사관 건물은 위치상 접근성이 뛰어났다. 하지만 미국 이민과 여행용 비자 발급 신청이 급증하면서 대사관을 에워싼 기나긴 비자 신청자들의 대기행렬은 건물의 미흡한 점을 확연히 드러냈다.

미 대사관 건물과 옆에 있는 쌍둥이 건물(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미국의 대규모 개발원조단체의 업무용 시설로 1960년대에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 즈음이었다. 1949년부터 반도호텔에 사무실을 두었던 미 대사관은 1968년 지금의 광화문 대사관 자리로 이전했다. 물론 임시 거처였다. 이후 1960년대부터 1990년대를 거치며 여의도, 안국동, 옛 경기여고 부지 등 다양한 장소가 대사관 부지로 거론됐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 각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다른 대사관 건물들이 세워지는 동안에도 미 대사관은 임시 거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신임 대사로 한국에 돌아갔다. 나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대사관 직원들에게 나는 환영식이 열리고 있는 그 곳이 내가 1975년에 외교관 시험을 본 바로 그 작은 구내식당이라고 말했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에서, 한·미 동맹이 양국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미 대사관을 짓는 것이 왜 이렇게 힘겨웠을까? 대사관 건립 프로젝트 자체가 엇갈린 운명처럼 불운했던 것 같다. 한·미 양국 중 어느 한쪽이 추진할 준비가 되면 다른 한쪽은 그렇지 못했다. 미국의 대사관 신축 공사비 예산 지원 절차는 점점 더 까다로워졌고 한국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전 정부의 결정을 재검토하곤 했다.

어느 현명한 한국인이 내게 말했었다. “한국에서 미국과 관련된 사안들은 외교 문제가 아니라 국내 문제”라고. 미 대사관 건립 문제만큼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도 없다.

미 대사관 건물은 한·미 양국의 관계를 반영하고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주한 미국대사 재임 기간 동안 청사 건립 문제를 진전시키려고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정확히 10년 전, 나는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 주한 미군사령관과 함께 대사관 신축 예정지인 용산구 부지에 기념 식수까지 하는 중요 지점에 이르렀다. 그래서 최근 미 대사관 이전 계획이 확정되었다는 언론 보도에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공직에 있는 동안 나는 전 세계 수십 개국의 미 대사관을 돌아보며 대사관 건물 자체가 외교의 설계구조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봐왔다. 위대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상징적 건축물이 그 지역의 환경은 물론 미국의 포부와 힘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보안과 안전에 대한 우려가 건물 위치와 구조물을 정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보았다.

서울에 제대로 된 미 대사관을 건립하는 데 반세기가 걸렸다는 점은 유감스럽지만 어쩌면 지금이 우리에게 오히려 유리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의 바람은 새로 짓게 될 건물이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공동성명서에서 언급한 한·미 동맹의 새로운 장을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오늘의 한국, 오늘의 미국, 그리고 우리의 깊고 굳건한 동맹관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양국의 국민에게도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 대사관 준공식에 직접 참석해 리본 커팅까지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캐슬린 스티븐스 / 전 주한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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