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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상] 기껏 좋은 대학 나와서…

백종인 / 스포츠부장
백종인 / 스포츠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9/09/24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9/23 18:45

졸업이 코 앞이다. 그런데 별 말이 없다. 잔소리 같아 묻지도 못했다. 알아서 하겠지. 앞가림 잘하는 딸이다. 친구들은 벌써 좋은 직장 구했나보다. 축하 통화가 잦다. 월스트리트, 실리콘밸리… 그런 단어들이 들린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아빠." 심상치 않은 표정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왜." 일부러 퉁명스럽게 답했다.

"나 대학 4년 장학금으로 다녔어."

"그래서, 뭘."

"그러니까 이제부터 아빠가 조금만 도와줘. 딱 3년만 해볼게."

테니스 얘기다.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말이다.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고생을 또 하려고? 맨날 울었다. 져서 울고, 다쳐서 울었다. 목발 짚고 다닌 날이 부지기수다.

테니스 선수 크리스티 안(27)의 얘기다. 한국 이름은 안혜림이다.

아버지 안동환씨는 유학생이었다. 대학(연세대 경영학과)을 졸업하고 뉴욕으로 갔다. 어렵게 공부해 회계사가 됐다. 가정도 꾸렸다. 1남 1녀가 공부를 잘했다. 아들은 치과의사가 됐다.

딸이 문제다. 어릴 때 배운 테니스에 빠졌다. 사실 제대로 가르친 것도 아니다. 비싼 레슨비 탓이다. 그래도 제법이었다. 주니어 대회 우승컵도 받아왔다. 16살 때(2008년)는 깜짝 놀랐다. US오픈 출전권을 따냈다. 전국 뉴스에도 나왔다.

"아빠, 나 프로 선수나 해볼까?" 손사래를 쳤다. "쓸데 없는 소리. 일단 대학부터 가." 공부도 꽤 잘했다. 하버드에서 장학금 제안도 있었다. 혜림의 선택은 스탠퍼드였다. 전공도 괜찮았다. 과학기술 사회학(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이었다. 얼핏 들으니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란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이제 테니스야 취미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거기서 다시 시작됐다. 잠자던 세포들이 깨어났다. 코트에 서면 심장이 뛰었다. 졸업이 가까울수록 심해졌다. 몇 주간 냉전이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나. 결국 아빠는 백기를 들었다. '딱 3년만.'

투어 프로는 극한 직업이다. 200위 밖 하위 랭커는 더 그렇다. 바닥부터 시작이었다. 가방 하나로 전세계를 떠돌았다.

여행이 아니라 전쟁이다. 호텔비, 항공료. 한 푼이 아쉽다. 환승은 기본이다. 공항 새우잠도 감지덕지다. 웬만한 거리는 차로 뛴다. 밤샘 운전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1년에 10만 달러는 족히 들었다.

열악한 조건이었다. 성적이 날 리 없다. 어찌어찌 3년을 버텼다. 올해가 약속한 마지막 해다. 아빠의 은행 잔고도 바닥을 보였다. 이제 정신 좀 차리겠지.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절박함이 승부욕을 불렀다. 이기는 일이 잦았다. 랭킹이 쑥쑥 올랐다. 급기야. US오픈 출전권을 따냈다. 16살 이후 11년 만이다. 본선 16강까지 올랐다. 그것만으로 28만 달러나 벌었다. 아빠는 그래도 불편하다. "세계 랭킹 1위가 돼도 말리고 싶어요." 땡볕에 새카매진 딸이 애처롭다.

부녀의 얘기는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그러자 몇 군데서 연락이 갔다. 취업 제안이었다. 실리콘밸리 쪽에서 꽤 괜찮은 오퍼도 있었다. 물론 거절했다. 혜림의 이유는 명확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죠. 아시아인들은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을 얻는 것에만 관심있다고.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어요."

랭킹이 올랐다. 어느 틈에 93위다. 그러나 더 신나는 일이 있다. 팬들의 성원이다. 특히 아시아계의 공감이 크다. '당신을 존경해요. 부모를 설득해서 꿈대로 살 용기를 얻었어요. 크리스티, 당신을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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