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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위 선생의 애국 활동을 아십니까?"

대한인국민회 학술세미나
31일 LA 옥스포드팔레스 호텔서

1905년 27세 나이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청년 이대위(David Lee.사진). 그는 1916년 한인 중 최초로 UC버클리를 졸업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친분을 쌓으며 조국 잃은 슬픔을 통감한 이대위는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1913년부터 1919년까지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을 역임하며 한영 문서번역, 차세대 한글교육, 출판을 위한 한글 식자기 발명, 신한민보 주필 등 왕성한 활동을 하다 1928년 5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대위 선생은 "동포들 편안하신지요. 아이들도 참말 보고 싶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이사장 배국희)이 '애국지사 이대위 목사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31일 오후 3시 LA한인타운 옥스포드팔레스 호텔에서 열리는 학술세미나는 이대위 선생의 생애를 통해 이민선조의 삶의 자세를 엿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대위 선생은 평안도 강서 출신으로 당시에는 보기 드문 '유학파'였다. 이 선생은 학업에 정진한 뒤 배움의 결실을 조국 독립운동을 위해 썼다. 안창호 선생을 통해 기독교를 믿고 목사 안수까지 받는다.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부 총회장을 맡을 때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한인사회 권익신장에 앞장섰다. 당시 연방 정부가 한인사회 자치권을 인정하도록 했고, 신한민보 주필로서 민족정신을 강조했다.



배국희 이사장은 "이대위 목사는 대한인국민회 외교문서를 영문으로 번역해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 염원을 세계에 알렸다"며 "목사로서, 독립운동가로서 한인사회 정체성과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다. 한인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우리 이민사회의 모범이 되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1995년 이대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 선생의 유해는 그가 한국을 떠난 지 100년 만에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배 이사장은 "이대위 목사님은 한인사회 기독교 발전에도 앞장섰다. 많은 분이 학술세미나에 참석해 이민선조를 기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의: (213)200-7525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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