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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조삼모사(朝三暮四)를 생각하며

춘추전국시대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취미로 원숭이를 길렀다. 어느 날 먹이가 부족했다. 이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도토리 먹이를 아침엔 3개, 저녁엔 4개를 준다고 알렸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 저공이 고민 끝에 그럼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준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흡족해 했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조삼모사(朝三暮四)'다.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원숭이는 바보들이다. 왜냐하면, 하루에 7개를 먹는다는 전체 도토리 수에는 전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똑같은 이야기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원숭이는 과연 주인의 잔술수에 현혹된 것일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원숭이 입장에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의 도토리를 받는 것은 옳지 않고 화나는 일이다. 하지만,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의 도토리를 받는 것은 옳은 선택이고 기쁨을 준다. 단지 아침저녁 도토리 개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갑의 일방적인 통보에 생각 없이 끌려가는 힘없는 을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밝히고 옳은 것을 관철한 것이다. 저공도 간사한 꾀나 잔술수를 쓴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LA한인타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보고 있자면 일반적인 뜻은 물론 다른 관점의 조삼모사가 오버랩된다.



한인사회에서 타운 내 노숙자 임시 셸터를 반대하고 나선 가장 큰 이유는 한인을 포함한 지역주민의 의견수렴과정과 객관적 자료 제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장과 시의장이 일방적으로 한인타운 내 가장 번화하고 인근에 학교도 많은 지역에 짓겠다고 결정해 발표했다. 이에 한인사회는 크게 반발하며 지금까지 모두 7차례 가두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허브 웨슨 시의장은 한인타운 내 다른 한 곳을 더 제시하며 기존 장소와 함께 타당성 조사를 한 다음 결정하겠다고 한 발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자 한인 비영리단체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즉각 공개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 이전까지 공개적으로 타운 내 노숙자 임시 셸터 예정지를 찬성했던 단체는 단 하나였다.

한인들은 줄기차게 외쳐왔다. 노숙자 임시 셸터를 반대하지 않으며, 다만 공정한 선정과정을 거쳐 선택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10지구 안에 모든 가능한 노숙자 셸터 부지를 찾아 타당성 조사를 한 뒤, 후보 지역 서너 곳을 대상으로 주민 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 선정하는 방식이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단지 한인타운 다른 지역 한 곳을 추가한 뒤, 타당성 조사를 하고 정하겠다는 것은 한인들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무조건 한인타운에 노숙자 셸터가 들어서야 한다는 논리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웨슨의 저의가 의심되는 까닭이다.

웨슨 시의장과 웨슨이 제시한 대안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한인 비영리 단체들, 그리고 한인사회에는 마치 반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뒤에서는 웨슨과 포도주 잔을 기울이는 일부 한인사회 지도층 인사는 지금이라도 한인사회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하고 따라주기 바란다. 특히 한인사회 단체장과 지도급 인사들은 한인사회의 백년대계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판단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한인사회의 단결력과 자존심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주류사회와 후손에게 당당해질 수 있는 길이다. 둑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구멍이 시초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한인타운 내 노숙자 임시 셸터 건립 문제는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거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김병일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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