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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말, 값진 말, 그보다 진솔한 말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09 23:01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3)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편집자)

『와일드』를 쓴 셰릴 스트레이드에겐 후일담이 있다. 책 본문 뒤에 ‘미그웨치’란 제목으로 붙어 있다. ‘미그웨치(Miigwech)’란 미국 미네소타주에 살던 오지브웨라는 인디언 부족의 말로 ‘고맙다, 감사하다’란 뜻이란다. 한데 여기엔 겸손의 마음이 곁들여 있다고 한다.


몸 만한 배낭을 지고 오랫동안 힘든 길을 홀로 걸어낸 셰릴 스트레이드. 그녀에게는 후일담이 있는데, 책 본문 뒤에 '미그웨치'란 제목으로 붙어있다. 미그웨치란 오지브웨 인디언 부족의 언어로 '고맙다, 감사하다' 라는 겸손이 곁든 말이다. [중앙포토]


혼자, 힘든 길을 오랫동안 걸어낸 스트레이드는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두었다. 2014년엔 그의 이야기가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그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인생의 바닥에서 꿋꿋이 일어나 행복한 삶을 일궈낸 셈이다. 그러기에 “다른 모든 사람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그것”이란 그의 토로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보통사람인 우리는 종일 여러 사람과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그중 대부분은 “밥 한번 먹자” 같은, 무게가 실리지 않은 말들일 터다. 아니, 쓸모있는 말을 할지언정 듣는 이의 가슴에 가닿는 말은 몇 마디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일상이다. 그러니 적절한 때, 마침맞은 말을 하는 화법에 관한 책이나 멋진 말을 모은 명언 집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옛 선인 272명의 지혜를 골라 엮은 책「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잔 할까』(엘리엇 부 지음, 지식노마드)는 돈, 인생, 신, 예술 등 6개 분야로 나눠 옛 선인 272명의 지혜를 골라 엮은 책이다. 한데 사상가, 문호 정치인 등의 한마디를 엮은 여느 명언 집과 다르다. 배우 오드리 헵번, 세계적 부호 폴 게티, 디자이너 코코 샤넬, 미국 유명 코미디언 그루초 막스 등의 이름도 보인다. 심지어 부면희라는 다섯 살 난 지은이의 딸도 등장하니 ‘누가’ 발언했는지보다 ‘어떤’ 말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골라낸 ‘열린 책’이어서 든든하다.

또 하나. 명언을 사전식으로 나열하지 않고, 일관된 문장으로 엮어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색다르다.

"비주류라고 두려워 말라. 오늘날 인정받는 주류들도 모두 비주류에서 시작했다. 당신을 두렵고 슬프게 하는 것들은 무시하라. 그것은 당신을 깎아내려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이끈다."
여기서 첫 문장은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다음 문장들은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것이다. 책의 대부분이 이런 식인 덕분에 여느 명언 집처럼 아무 대목이나 읽어도 좋되, 에세이를 읽는 맛이 있다.

"누가 인생이 공평하대? 어디 써 있어? 인생이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줄 의무는 없다."
미국 소설가 윌리엄 골드먼과 레이 브래드버리의 통렬한 일격인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6장 ‘불안(anxiety)’에 보면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내가 인생에 관해 배운 모든 교훈은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인생’은 ‘흘러’ ‘간다’. 삶에서 도망친다고 평화를 얻을 수는 없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와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조언인데 체험에서 우러나온 셰릴 스트레이드의 토로와 통하는 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수의 편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야말로 잠시 멈추고 돌아볼 시간이다”란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소수가 항상 옳았다’란 절에 실린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지은이는 잘 나가던 건축가로 어감과 달리 한국인이다. 세계적 명문대를 나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다 어느 날 문득, 인생이 엉키고 꼬이면서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단다. 그래서 독서를 ‘방공호’ 삼아 숨어 시공을 초월한 선각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적절한 답과 위안을 얻어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어찌 보면 한없이 가벼운 제목의 이 책은 오로지 ‘자살’에 관한 처방은 아니다. 감탄이 나오는 멋진 말, 유명 철학자나 종교인이 한 값진 말보다 울림이 큰 말은 진솔한 말이다. 이 책에서 그런 구절을 만난다면 그래서 죽음은 모든 일의 끝이 아니고, 모든 어려움의 해결책은 더더욱 아니며, 유독 자기만 절망적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어쨌든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만하니까.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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