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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의 나우 인 재팬] 메이지 유신 맞선 아이즈 … 자결한 19명 소년무사 참배 발길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02 08:05

메이지 150주년, 평가 시각 엇갈려
패자 후쿠시마는 저항 전쟁 기리고
승자의 후예 아베는 정부 차원 기념
“근대화 초석”“군국주의 잉태” 맞서


아이즈번 이모리산 중턱 소년 무사들의 묘지를 관광객들이 참배하고 있다. 자결 시도한 20명 중 1명이 극적으로 살아나 묘지석은 19개다. [서승욱 특파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도시는 천혜의 요새처럼 보였다. 150년 전의 역사를 더듬는 이들로 그 곳은 시끌벅적했다.

지난달 17일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후쿠시마(福島)현 아이즈와카마쓰(會津若松·옛지명은 아이즈번)의 모습이다.

아이즈번은 도쿠가와(德川)막부와 한 집안인 다이묘 아이즈 마쓰다이라가의 영지였다.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 유신의 중심세력, ‘삿초(薩長·사쓰마번+조슈번)동맹’에 대항하는 반(反)삿초, 반(反)유신의 중심이었다. 사쓰마는 지금의 가고시마(鹿兒島)현, 조슈는 야마구치(山口)현이다.

아이즈번은 대세가 삿초동맹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나머지 세력을 규합해 보신전쟁(戊辰戰爭·1868년 1월~1869년 6월)을 치르며 거세게 저항했다. 1868년 5월부터 아이즈성(쓰루가성)을 배경으로 치러진 5개월간의 치열한 전투는 그 하이라이트였다.

특히 유명한 건 뱌코타이(白虎隊·백호대)의 비극이다. 적의 추격에 쫓겨 이모리산 중턱에 숨어든 백호대 소속 15~17세 어린 무사 20여 명이 성 주변의 연기를 보고 성이 함락된 걸로 오해했다. 8월 23일 이들은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장렬한 최후가 낫다”며 집단 자결을 택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성 주변을 바라보는 소년상, 그리고 나란히 서 있는 19개의 묘지석은 비극적인 운명을 웅변한다. 자결터와 묘지석 주변에 참배객이 많은 이유다.

‘반란군’의 오명을 쓴 아이즈의 무사 등 1만7000명은 혼슈(本州)의 땅끝인 지금의 아오모리(靑森)현 시모기타(下北)반도의 황무지로 쫓겨났다. 아이즈 역사 연구가들은 “일본 근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원한과 분노가 잉태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30년대까지의 일본 역사 교과서는 이들을 ‘반란군’으로 묘사했고, 각종 인사 등에서 엄청난 차별을 당했다는 피해의식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난달 17일 찾은 아이즈와카마쓰에선 ‘메이지 유신 150년’이란 문구 대신 가는 곳마다 ‘보신전쟁 150년’이란 깃발만 펄럭였다.

150년 전 아이즈번 사람들을 황무지로 보낸 건 조슈번 출신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다. 삿초동맹을 성사시킨 유신 3걸 중 한 사람이다.

기도의 후손인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달 26일 자민당 총재 경선 출마 선언을 일부러 가고시마에서 했다. 그리곤 “사쓰마와 (자신의 출신지역인)조슈가 다시 한번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지지통신은 그날 “아이즈처럼 반대쪽에서 싸웠던 지역의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베 총리에게 메이지 유신 150년은 빛나는 승자의 역사다. 승자의 땅 가고시마와 야마구치에선 기념행사가 1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10월엔 정부 차원의 기념식까지 열린다.

메이지 유신이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된 건 부인하기 어렵다. 메이지사 권위자인 미타니 히로시(三谷博)도쿄대 명예교수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된 제1혁명이다. 태평양전쟁 이후의 개혁, 즉 제2혁명으로 이어져 현재 일본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의 역사가 모두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아이즈의 비극’이란 대립과 차별이 있었고, 1890년대 이후 일본 전체를 전쟁 체제로 몰아간 과오가 잉태되기도 했다. 그래서 “메이지 유신엔 군국주의 일본의 토양이 된 마이너스적인 측면도 있다. 통째로 찬양하는 건 지나치다”(니혼게이자이 신문), "메이지 시대 초기 고양됐던 자유·인민·평등의 정신이 (전쟁이 나면 천황을 위해 싸우라는 취지의) 1890년 교육칙어 발표이후 사라져 버렸다”(아사히 신문)는 비판들이 나온다. 또 “인구 증가를 전제로 한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중앙집권에만 몰입하는 등 각종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메이지 이후”라며 ‘메이지 레짐의 극복’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 일본 서점가의 대세도 메이지 유신 예찬이 아니다. 『유신의 그늘』, 『메이지 유신이라는 과오』처럼 과대포장을 경계하는 책들도 수두룩하다.

메이지 유신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메이지 유신 주도한 야마구치현 … 이토 히로부미 등 총리 8명 배출
1966년 9월 1일 김종필 전 공화당 의장(오른쪽)이 방한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일본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중앙포토]
아베 신조 총리에게 야마구치현은 자부심의 근원이자 원점이다.

자민당 총재 3연임에 도전하는 그는 “조슈 정치인으로서…” “사쓰마와 조슈가 힘을 합쳐…”라는 말을 자주 쓴다. 조슈는 사쓰마번과 ‘삿초동맹’을 맺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렸고 메이지 시대 이후 사쓰마와 총리직을 주고 받으며 일본 정치를 석권해왔다.

야마구치현 출신의 총리는 현재의 아베 총리를 포함해 모두 8명이다. 전국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광역자치단체)중 가장 많다.

태평양전쟁 패전 이전엔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초대 조선통감)와 ‘조슈 군벌의 대부’로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가쓰라 다로(桂太?)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초대 조선총독),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등 5명이다. 전후엔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그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그리고 아베 총리 등 3명이다.

야마구치현 출신 총리들은 재임 기간도 압도적으로 길다. 역대 총리 57명 중 재임기간 1위인 가쓰라 다로(2886일), 2위 사토 에이사쿠(2798일), 3위 이토 히로부미(2720일)가 모두 야마구치 출신이다. 아베 총리는 2일 현재 2445일로 5위다.

아이즈와카마쓰=서승욱 도쿄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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