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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행복한 삶의 순간들


지인이 전화를 했다. 문밖에 음식을 가져다 놓았으니 남편과 맛있게 아침을 먹으라고. “정성을 들여서 만든 맛있는 음식”이라는 그녀의 음성이 문을 여는 나의 귀에 가늘게 떨렸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야말로 한 보따리 음식을 들고 들어와 테이블 위에 폈더니 따끈한 흰밥에 온갖 반찬이 곁들여 있고 미역국과 파인애플 디저트까지 완벽한 끼니다.

언젠가 여행중에 찻집에 들러서 스콘에 발라 먹은 잼 병의 뚜껑에 써있던 ‘Eat well, Love life’ 가 생각나서 키득대고 웃었더니 남편이 따라 웃었다. 잘 먹고 잘 살라는 정감어린 메시지를 담은 지인의 마음이 내 가슴에 안겼다. 그녀가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받아 즐긴 일은 벌써 여러번이다. 매번 남편의 선호를 배려한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고마웠다. 오늘도 멀리 사는 딸들보다 이웃 사촌이 더 정겨운 날이 됐다. 평소에 내가 요리하지 않는 다양한 한식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나른하게 의식이 풀렸다. 행복한 삶의 순간이다. 요즈음 무엇을 하든, 누구와 만나든 이런 안온한 여유를 많이 느낀다.

2월이 ‘흑인 역사의 달’임을, 그 의미를 강조해서 앨라배마 주립극장 ‘앨라배마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에서 연극 두 편을 공연한다. 극작가 크리스티나 햄의 ‘Four Little Girls: Birmingham 1963’ 와 ‘Nina Simone: Four Women’ 을 무대에 올려서 과거의 사건이 과거에 머물지 못함을 알린다. 첫 연극은 1963년 버밍햄 16번가에 있는 흑인침례교회에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 멤버들이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폭탄 테러를 범해 전국민을 경악시킨 사건이 주제다. 모두 몽고메리 공립학교 학생들인 남녀배우들이 그 당시의 사회환경을 재연하면서 테러로 희생당한 4명의 순진한 소녀들과 그들이 가졌던 꿈을 소개했다.

두번째 연극에서는 폭탄테러 다음날 파손된 교회에 우연히 모인 제각기 다른 생활상을 가진 흑인 여성 4명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인권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의 울분이 니나 시몬의 음악에 섞였다. 갈등과 충돌을 거쳐 서로가 동질임을 인식한 여인들이 껴안은 순간 나도 팔을 크게 벌리고 그들과 조인했다. 인간애의 승리다. 인권이 없는 흑인들의 처절했던 삶을 정면에서 만나니 평등과 존엄을 위한 흑인들의 핏빛 투쟁은 가슴 시리게 아프고 분명했다. 더불어 니나 시몬의 영혼을 뒤흔든 노래는 불평등한 사회에 항거하는 인권운동이었다.



지난 주 큰딸이 이곳에 출장 오면서 어린 아들의 머리에 붉은 리본을 붙이고 데려왔다. 외갓집을 처음 찾아오는 이제 20개월 손주는 아주 특별한 손님이라 그를 위한 준비가 만만하지 않았다. 평소에 흩어 놓고 살던 집안 어느 곳도 한창 설치며 만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아이 보호 장치도 없어서 무엇보다 집안 곳곳에 노출된 위험한 상황들을 치웠다. 책들과 잡동사니들은 방안으로 들여놓고 화학제품들은 모조리 높은 선반 위로 옮기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것들은 캐비넷 안으로 숨겼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친절한 이웃은 선뜻 자기 손자의 세발 자전거와 장난감을 가져와 사용하라며 내 손자의 방문을 함께 좋아했다. 집안 청소를 하고 온갖 과일과 식품을 잔뜩 사놓고 데리고 나가서 보여줄 장소를 물색해뒀다. 조카가 온다니 조지아에 사는 작은 딸네가 개까지 데리고 왔다. 아이와 개는 조용하던 집안을 온통 활기로 채웠다. 신나게 집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를 따르던 개는 아이만큼 활발했다.

미술관과 동물원은 완벽한 자연 교육장이었고 아이가 맘껏 놀았던 실내 놀이터는 근사한 운동장이었다. 두 딸과 사위가 연극을 보러 간 사이 아이는 그림을 그렸다. ‘어린 왕자’가 되어 크레용으로 가족 모두의 초상화와 동물원에서 본 동물을 하나하나 지그재그로 환상적인 그림을 탄생시켰다. 무려 3시간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한 아이의 대단한 집중력은 나를 놀라게 했다. “할머니” “그랜파” 부르며 재롱을 피운 아이는 매순간 우리 부부에게 기쁨과 신선한 활력소였다.

작년 중간선거 후부터 벼르다가 트럼프 선거운동한 토박이 친구와 재회했다. 모든 매체의 뉴스가 가짜라며 뉴스를 보거나 듣지 않으니 머리가 아프지 않다는 그녀에게서 희망을 읽었다. 우리는 예전처럼 공통 관심사인 세계적 이슈들을 논의했고 세상을 더 잘 알기 위해 공부하며 깨어있는 의식으로 바르게 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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