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종교칼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대열 목사 (열방침례교회)

여호수아서 14장을 보면 갈렙은 나이 85세에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요청은 매우 당당하다. 단지 여호수아라는 지도자를 넘어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요청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그리고 마침내 갈렙은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에게도 갈렙과 같이 하나님께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는 산지가 있는가? 오늘날의 성도가 적용할 수 있는 이 산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임하고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왕국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부활 승천하셨다.
그렇다면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 “주 예수여 어서 오셔서...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소서!!!” 자...그렇다면 누가 하나님께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구할 수 있을까? 즉 “주 예수님, 어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소서” 라고 당당하게 구할 수 있을까?
갈렙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아 보자: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수 14:8절)
갈렙은 지난 45년 동안 쉬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하였다. 갈렙이 당당하게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라고 요청할 수 있었던 근거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었다. 하나님께 충성한 자가 당당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산지를 구할 수 있듯이 오늘날의 성도들도 하나님께 충성한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성도가 오늘날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갈렙을 통하여 배우고 적용해 보자.

첫째, 하나님의 비전을 좇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었다. 그 비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아낙자손 같은 거인들을 보고 간담이 녹아 두려워 떨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나안 땅을 능히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빼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절망하여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비전을 더 이상 좇아 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갈렙은 사람들의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반응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좇기로 결정하였다.
오늘날의 성도들이 교회를 섬길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좇아가는 것이지 사람들의 견해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무시하고 뜬 구름 잡듯이 비전만 좇아간다는 말은 아니다. 진정한 신앙은 삶의 현장이 얼마나 열악하고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람들의 판단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형편과 사람들의 조언에 자기의 운명을 걸지는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사람들의 조언을 참고하지만 결국 하나님께 나의 운명을 거는 것이 하나님의 비전을 좇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의견에 좌지우지 하며 인생을 살아간 자는 결코 하나님께 충성할 수 없다. 사람들의 평가나 반응보다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좇아간 자만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이 85세는 인간이 지닌 모든 능력이 한계를 드러내는 때이다. 필자도 나이 50이 넘으면서 일단 기억력이 쇠퇴하고 두가지 이상에 집중하기 쉽지 않음을 경험하고 있다. 머리로는 큰 아이 이름을 부르는데 입으로는 둘째, 셋째 아이의 이름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최근에는 ”현재“ 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내 입에서는 “미래” 라는 단어가 불쑥 튀어 나왔다. 내가 생각하는 데로 내 입도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될 때가 있다.
신체적으로는 일단 몸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눈이 침침하여 져서 정확히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신체적, 정신적 한계가 드러나고 이런 이유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정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이 85세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갈렙은 “오늘 내가 85세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헤브론 땅을 잊지 않고 구하였다. 45년 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아직 정복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 나이 먹어서...내가...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겠나?” 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갈렙을 떠올리자.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은 은퇴가 없다.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그 약속이 성취될 까지 충성하는 것이다.
성경의 중요한 인물들이 갈렙과 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아브라함은 75세에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25년동안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의 리더가 되어 40년을 섬겼다. 예수님은 30년을 준비하신 후 3년 동안 비전을 이루시는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께 충성하신 것이다.
나이가 먹고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끼면서, 혹은...오랫동안 성취되지 않은 하나님의 비전으로 말미암아 현실에 타협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삶은 죽는 순간까지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기억하며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세번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수 14:12)

갈렙의 고백을 잘 살펴보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비전을 좇아가는 것에 ‘걱정’이나 ‘의심’ 이 석여 있지 않다. 오히려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강한 신뢰가 담겨있다.
갈렙은 (1) 나이가 너무 많아 늙었고 (2) 하나님의 비전은 45년동안 성취되지 못하였고 (3) 헤브론에 있는 성읍들은 여전히 크고 견고하였지만... 승리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당당하고 자신 만만한가? 하나님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강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문제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아직 어린 나이에도 골리앗이라는 불가능한 대상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물론 사울 왕도 두려워 떠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윗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께 달린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세상의 문제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가 아니다. 그 문제를 일으키는 영적 싸움이 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인생의 문제는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싸우는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불신하느냐에 달려있다.
아브라함 링컨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서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의 일이다. 교회의 대표자로 링컨에게 보내어진 사람이 링컨에게 격려의 말을 했다. “링컨씨, 우리는 주님이 우리 편에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네, 나의 진실된 관심사는 주님이 어느 편에 계시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과연 주님의 편에 서 있는가 입니다. “

네번째, 리더와 협력하는 것이다.
갈렙은 철저하게 여호수아의 리더쉽을 존중하였다. 갈렙은 가나안땅을 정복하는데 1등 공신이었지만,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고 여호수아의 리더쉽을 끝까지 존중하였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자기가 속해있는 공동체에서 1인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와 조건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은 “리더였냐 따르는 자였냐?” 혹은 “목사였냐 평신도였냐?” 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성도를 외모와 직분으로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어떤 외적인 업적을 가지고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겼는지를 평가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권능을 행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리더의 자리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화려한 사역 이면의 마음을 보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저주하셨다.
갈렙은 1인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부터 자유한 자였다. 오히려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할 수 있도록 리더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성도가 속해있는 교회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여선교회든 청년회든 어떤 모임이든 우리는 함께 좇아가야 할 분명한 하나님의 비전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도록 서로 서로에게 협력하고 복종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

다섯번째,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나누는 것이다.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 성 주변의 땅으로 만족하고, 그 성 자체는 기꺼이 여호와의 수종자들인 제사장들에게 내주었다. 그런데 헤브론은 “association” “연합” “친밀한 교제” 라는 뜻이 있다. 갈렙이 정복한 헤브론 땅은 말 그대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연합하는데 귀한 도구가 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총이 무엇인가? 재물과 시간과 재능을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하여 기꺼이 사용하라. 교회 공동체가 연합하고 세워지는데 아끼지 말고 사용하라.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아까워 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께 충성하였다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는 찬송을 부르거나...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인생의 계획이나 야망을 위하여 노래하거나...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라고 찬송하거나 기도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비전에는 인간의 야망과 술수와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어떤 성취나 업적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충성하는 것을 요구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 충성한 자가 하나님께 당당히 구할 수 있다.
“주여,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주여, 어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소서”

이대열 목사 (열방침례교회)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