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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인도 뭄바이의 두 얼굴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peterjung49@naver.com
LNG Specialist

'Lion'이란 인도영화를 보다보니 2004년 2월 말, 뭄바이를 일주일간 방문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1980년대 인도의 빈민가에 살고 있던 5살짜리 꼬마 사루(사자라는 뜻)가 미아가 된 후 호주로 입양을 가게된다. 서른살이 된 그가 어느날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맛본 인도 과자 젤라비를 보고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라 구글어스로 25년 기억을 더듬으며 어렵게 고향을 찾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7600km 귀향길에 올라 형과 어머니를 만난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감동적인 영화이다.

뭄바이, 옛 이름은 봄베이다. 인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국제적인 항구도시다. 미국의 뉴욕처럼 인도 금융과 상업의 중심도시이며, 도시인구는 천만 명이나 된다. 대영 제국 식민지배의 상징인 '인도 관문(Gateway of India)'과 식민지풍의 옛 건물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도시이다. 아름다운 사리를 입고 걷는 인도 여인들 뒤로 유럽에서나 볼법한 화려한 건물들이 있지만, 살인적인 교통 체증과 빨래터 도비가트Dhobi Ghat에서 본 불가촉천민Untouchable인 도비왈라빨래꾼의 힘든 삶 때문에 가슴 시린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해 나는 인도 가스 협회에서 개최하는 "제2차 Asia Gas Buyer's Summit"에서 "한국의 전국 가스 배관망 건설 경험 및 전략"이라는 주제 발표를 위해 참석했었다. 우리 일행은 인도 최고의 호텔이라는 타지마할 호텔에 묵었다. 이 호텔 건설 배경은 호텔 출입을 거절당한 인도 갑부 타타의 한이 맺힌 곳이다. 뭄바이 자본가 타타가 그의 영국 친구와 함께 아폴로 호텔에 식사하러 갔다가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하자 인도 제일의 호텔을 짓기로 결심하고 최고급 자재를 사들여 1903년에 완공했다.

건물 외관은 인도 사라센 건축양식과 고딕 양식으로 그 위용과 화려함이 빼어나고 호텔 로비를 포함한 전 객실 내부는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타지마할 호텔은 2008년 11월에 발생한 뭄바이 테러 사건으로 인해 세상에 더욱 알려지게 되는 슬픔도 간직하고 있다.



1911년 영국 왕 조지 5세 부부의 인도 방문을 기념하여 세워졌다는 '인도 관문'은 인도 뭄바이의 상징적인 건조물이다. 타지마할 호텔 앞 뭄바이 만의 아폴로 부두에 서 있는 거대한 문이며, 16세기 구자라트 양식으로 지름 15m 중앙 돔이 있는 형태로 높이 26m의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 시내 관광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빅토리아 역과 뭄바이 시청 및 팔라디움 쇼핑몰을 바삐 돌아본 후, 인도 성자인 '간디' 기념관을 찾았다.

간디가 1917년부터 1934년까지 인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운동 본부로 사용한 3층 건물이다. 인도인들이 '마하트마Mahatma' 일명 '위대한 영혼'이라 칭송하는 간디는 인도의 독립과 인간의 깨우침을 위해 비폭력 불복종으로 고요히 투쟁한 성자이다. 간디 이름 앞의 '마하트마'는 인도의 시성으로 노벨상 수상자인 타고르가 붙여준 것이다.

뭄바이 시 동쪽 조용한 동네에 자리한 이 건물의 2층에는 간디가 사용했던 작은방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그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간디가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자주 돌렸다는 물레와 수많은 책, 그가 사용했던 지팡이, 작은 탁자, 자신의 친동생과 주고받은 편지와 함께 뭄바이에 머물던 17년 동안의 변화된 간디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면서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에 평생을 바친 운동가인 간디 기념관을 나오면서,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평생을 바쳤으나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암살된 백범 김구 선생님을 떠올리며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기념관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은 것에 대한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인도의 빨래터 도비가트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나라든지 급격한 도시화를 겪은 대도시 주변에는 슬럼가가 있기 마련이지만, 많은 사람이 대대로 물려가며 빨래만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 카스트제도에 따른 인도인의 신분은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이나 귀족), 바이샤(상인), 수드라(일반 백성 및 천민)등 네 계급으로 구분되며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못하고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불결하게 여기는 '불가촉천민'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도비왈라들이 받는 세탁물 한 벌 값이 기계로 세탁하는 값의 반의반 정도라고 한다.
온종일 일해도 월평균 10만 원 남짓한 돈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도비왈라들의 곤궁한 삶을 보여 주는 것이 이곳 뭄바이 관광상품 중에 하나라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곳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그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물질 만능주의에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처음으로 방문했던 뭄바이에서 마주쳤던 인도의 두 얼굴이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한 연민으로 남아 잊히지 않는다. 인도 가스협회에서 베푼 공식 만찬 때, 화려한 민속공연을 보면서 맛보던 그 많던 음식들이 도비왈라의 궁핍한 삶과 오버랩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편치가 않았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13억 명 인구를 가진 신흥 강국 인도,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우리가 21세기 물질 만능 시대를 살고 있지만,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빈부격차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하루에도 1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우리나라에도 궁핍한 소년 소녀 가장들이 많이 있고, 미국 길거리에서 홈리스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사순시기(Lent)'를 지내며 '금식(Fast)'의 의미를 새겨본다. 모든 사람이 잘 사는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특정인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싶다. 나라 안팍으로 어려운 때에 내 주위에 어려운 이웃은 없는지 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peterjung49@naver.com
LNG Speci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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