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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전하는 예수]오병이어

[텍사스 중앙일보] 발행 2012/05/19 미주판 0면 기사입력 2012/05/18 15:42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죄인된 인간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는 책입니다.
한문장으로 요약을 하면 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조용히 계시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스토크처럼 따라 붙었습니다. 필사적으로 주님있는 곳을 알아내어서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왔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수많은 군중들은 예수님을 만나려 빈들로 나왔습니다. 왜 이들은 예수님께로 나왔을까요?
진리를 배우기 위함도 예배를 드리기 위함도 아닙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고 병을 고치거나 구경하려고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마11:7-8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좇아오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 중에는 굶주린자, 병든자, 외로운자, 소외된자들, 소망없는자들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집나간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의 마음을 볼수 있습니다. 힘들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는 측은(側隱)한 마음을 가집니다. '측은히 여기다'는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라 합니다. 도와주지 않고는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뜻합니다. .
그런데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무리를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측은한 마음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인간을 보시면서 느끼는 마음이 불쌍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 병들고 인간생활에 지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쌍히 여김이 아픔이 되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 목말라 나온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간음중 현장에서 붙잡혀와 돌아 맞아 죽어야 할 여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두 번째 마음은 “이들을 먹여야 되겠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 잡아 잔치해서 먹이고 싶어 했듯이 굶주린 무리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먹이고자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했을 자식을 생각하면서 씨 암닭을 잡듯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싶어 하는 마음은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물어보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먹일 수 있을까?”
과연 2천년 전에 오천 명을 먹일 음식을 금방 구해올 식당이있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불가능한 것을 아시면서 이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까?
6절 빌립을 시험코자함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 원했습니다.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싶어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음식은 예수님께서 음식을 공급하실 것이다.
7절에 빌립은 대답합니다. 이백 데나리온의 떡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누가 생각해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대답은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못한다는 생각과 말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지금 상황에 못한다는 말은 그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없습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홍해앞에선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수 없다는 말은 해결책이 아니라 죽는 길입니다.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 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빌립의 해결책은 무리들을 마을로 보내 사먹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해결책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였습니다. 또 다른 제자 안드레의 해결책은 요6:8-9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안드레 생각은 되던 안되던 해봅시다. 어렵지만 주님이 도와 주시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환경과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안드레는 주님이 어떻게든 먹이시려 하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기적이란 내가 원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허락하셔야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하심을 간파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안이고 믿음입니다. 과연 이 일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들고 축사하시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2절 배불리 먹었다. 남은 조각을 모으니 13절 열두바구니가 남았습니다.
보잘것 없는 오병이어 이지만 주님께 드려지고 축사하시자 5천을 먹이고도 남았다.
우리들은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드려지고 축사하시면 달라스를 먹이고도 남을 것입니다.
주님 우리 교회들을, 사업들을 오병이어 처럼 사용하여 주옵소서.

충현장로교회 김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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