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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문학마당]하루

[텍사스 중앙일보] 발행 2012/06/01 미주판 0면 기사입력 2012/05/31 15:55

알코올 중독자의 이사 짐을 싸 주기로 약속한 날이다. 짐은 다 팔아버려 얼마 없다고 했고 수고 비는 백 불이라고...... 그는 한때 아주 잘 나가는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음주 운전으로
고급 승용차도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한다. 주택도 중산층은 되는 듯 좋은 집이었다.
알코올중독자라고 해서 약간 겁을 먹었는데 다행히 그 집에는 나이 지긋하신 분과 젊은이 한 분이 정답게 맞아 주었다. 쾌활한 주인은 삼 십대 중반으로 보이고 알코올 중독자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점심으로 싸가지고 온 샌드위치와 가방을 한 구석에 두고 앞치마를 두르고 살림의 규모를
어림 짐작을 해 보았다. 소개해 준 사람의 말과는 영 다르게 물건이 많은 것 같았다, 어제
월마트에서 준비해 온 빈 박스를 펼쳤다. “ 자! 시작하자.”

냉수를 한 잔 마시고 시계를 보니 10시 25분, 박스에 테이프를 부치고 액자를 신문지에 싸고, 책들은 대부분 군인들이 보는 군사용 들이고 상장과 사진틀 속에 한 때는 이 사람도 군인 장교로 빛나든 시간들이 정지해 있었다. 액자 속 그림들은 생소하기 그지 없는 총기류 사진이나 텍사스 카우보이 미식 축구 사진 등 잡다한 것들이 벌써 한 방에서 8 박스가 나왔다. 그는 이것 저것을 젊은 친구에게 나눠 주고 오래된 콜렉션 처럼 두터운 독일씩 맥주잔? 같은 것도 나이든 분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또 다른 방 그의 가족과 연관되는 짐들인지 그러나 어디에도 부인의 흔적은 없고 아이들의 오래된 곰 인형, 옷가지 몇 개, 졸업 때 찍은 가족 사진 한 장이 뒹굴고 있었다. 부모님의 함박웃음이 기대에 찬 아들의 미래를 축복하는 시간도 사진틀 속에 갇혀 있다. 그는 젊고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다. 사진 속의 남자는 실종되고 초라한 껍질의 남자. 옷들은 모두 최 고급 브랜드였고 턱시도와 하안 와이셔츠 칼라에는 때도 묻지 않은 정결한 예복에 나는 한참 동안 멍해졌다. 이 예복을 입고 미래를 약속했던 이 시대의 사랑은 믿은 수 없어라. 텅 빈 집안의 적막함에 허무의 한 자락에 휘감긴 나를 밀어 낸다.

박스에 담고 안간힘을 쓰며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는데 조금씩 힘이 빠져 나갔다. 방 세 개를 다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니 벌써 시간은 세시, 그들은 점심 먹으러 간다며 나에게 뭘 사다 줄까 하고 물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싸 가지고 왔다며 사양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덩치가 곰만한 개 한 마리와 나는 어지러운 집에서 조우하고 가져 온 점심을 꺼내 먹으려니 그 주변이 어 수선 했다.
아니 내 점심을 언제 말끔히 먹어 치운 저 덩치 큰 개가 시침 뚝 떼고 나를 바라 본다. ‘나는 어떡하라고……’ 배고픔이야 참겠지만 힘이 없으니 난 어떡해, 말 못하는 짐승을 때릴 수도 나무랄 수도 없는 이 한심한 순간 나는 개에게 보시한 셈치고 마음을 굳게 먹고 냉수 한 컵으로 배를 채웠다. 그래! 내가 언제 또 다시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잘됐구나.”이렇게 마음 돌리고 거실의 것을 짐을 싸고 부엌으로 갔다.

부엌은 넓고 멋진 공간이었다. 부엌에서 놀기 좋아하고 음식 하기 좋아하는 나는 이곳이 내 집이라면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중간에 아일랜드도 있고 하나하나 문을 열면서 와! 하고 탄성을 지른다. 집기들과 그릇의 고급스러움, 동시에 상상도 할 수 없이 많은 물건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릇 세트와 크리스털 제품들의 우아하고 정교함, 고급 스텐레스 냄비들 그리고 수 많은 집기들. 끝없이 나오는 물건에 나는 점심도 못 먹고 6시경에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주인인 알코올 중독자는 늦게 사 들어 와 조금씩 술을 마시며 내 곁에서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잘 알아들을 수 없으나 계속 술병을 들고 지난 날의 추억을 쓸쓸히 반추하는 듯 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이것 저것을 가져가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렇게 많은 것을 소유하고 버리고 해체시키고 떠나고 또 안착하고 사는구나. 나도 2 년 전에 그곳을 떠나 올 때 그렇게 버리고 해체되어 그 쓸쓸함이 다시 어깨가 시려왔다.

부엌 살림과 목욕탕 그리고 세탁실, 펜츄리을 열자 낮 선 음식들이 가득하고 냉장고 속에 남은 음식들도 나에게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한다. 양식을 어디에 쓰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쓰레기 통에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에 이것 저것 담아 차에 넣었다. 내 창자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땀이 젖은 나는 마지막 세 개의 옷 가방에 다 집어넣고 8시가 다 되어 일이 마무리 되었다. 쓰레기 봉투가 큰 비닐 봉투에 5 개, 흑인 친구가 와서 가져간 물건들, 내가 실어온 음식들......이렇게 이 집은 35 개의 박스와 3 개의 가방으로 텅 비었고 가구들은 가구점에 싼값으로 넘어가고 초라한 아파트로 가구점 종업원이 이사 짐을 다 싣고 떠난다. 알코올 중독자는 그래도 내가 수고한 시간을 헤아려 20불의 팁을 주는 여유를 보였다. 술에 취하여 있지 않다면 이 광경을 그냥 넘기기 힘들 것이다. 무엇이 저 사람을 술 마시게 하였을까? 다시 구도의 길은 없을까?
내 코가 석자이면서도 나는 그 사람의 깊이 박힌 그 상처를 헤아리고 싶어진다. 아직도 태양의
잔해가 이글거리는 시간 지친 몸으로 확 끼쳐오는 차 안의 더위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그를 위하여 화살기도를 바친다. "주님 해가 저물어도 집에 돌아 올 가족이 없는 저 불쌍한
사람에게 다시 가족을 주소서"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 집에 가면 기다리는 딸이 있고 정돈된 내 삶의 질서가 있으니...... 집 앞에 도착하니 딸 씨 재린이가 나와 차문을 열고 "와! 이게 다 뭐야? 하며 놀란다. 우리 신나게 양식 해먹자. 엄마 보너스도 받고 부수입으로 이것도 생겼다. 집안 서늘한 공기와 아늑함에 나는 주저앉아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나의 고단한 하루는 노동과 감사와 사랑으로 푹 익어 내일의 거름이 될 것이다.

최정임

2001년 에피포도 문학상 시 등단
2009년 해외문학 신인문학상 수필 등단
달라스 한인 문학회 회원
카톨릭 신문 및 지역 신문에 다수 글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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