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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매거진]말라리아 가족이라는 별명

[텍사스 중앙일보] 발행 2012/06/09 미주판 0면 기사입력 2012/06/08 07:31

이헌도 선교사와 잡부들이 우물을 파는 모습.

이헌도 선교사와 잡부들이 우물을 파는 모습.

사막에 오아시스를 건설한다는 것은 생각부터가 무모하고 바보 같은 것 같다. 창조이래로 외국인의 땀이 뿌려지지 않았던 우간다의 한 동부지역 오지에 사역이 연결되어 뿌리칠 수도 없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 때문에 이곳에서 암미선교센터와 이동신학교의 본부가 되는 동아프리카신학교를 건설하고자 지난해 초부터 부시(잡목과 풀로 이루어진 들판)와 밭을 개간해 선교관을 이루어왔다.
전기스위치를 조작하면 불이 들어오고, 냉장고문을 열면 언제나 시원한 물을 마시고, 수도꼭지를 틀면 시원스레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까마득한 옛날의 일처럼 느껴지면서 전기 없고, 수도시설 없고, 문명의 세계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아프리카 현지인 동네 한가운데서 선교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달라도 너무나 다른 세계의 사람들 속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과 사역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도박 같았다. 안녕과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거의 1년을 넘게 모든 생활용수와 건축용수를 일일이 트럭으로 날라 와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현지인들과 마찰을 일으켜가면서 물을 확보해 와야 하는 전쟁과도 같았다.
동네이름조차 ‘모래’라는 뜻을 가진 아싱에, 오죽하면 모래라는 이름이 붙여질 만큼 이 동네는 건조하고 메마르고, 황량하고, 지질이도 복이 없는 그런 지역이었다. 외국인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도 가지각양이다. 환영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고, 공통점이 있다면 어쨌든 무언가라도 이 외국인 선교사에게 도움 받을 것이 없을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이 척박한 땅에 집을 세우고, 건축을 감행하면서 어쩔 수 없이 공사현장에 묻혀서 같이 움직여야 했다. 흔히 말하는 노가다 판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고, 장교출신이라 군대에서조차도 작업을 해 본적이 없는 소위 귀공자 타입의 목사가 이제는 검은 아프리카인들과 건축현장에서 함께 뒤엉켜야 했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하루 15시간의 육체노동을 감당해야 되는 것은 심신을 곤하고 지치게 했다. 그러다보니 그간 7년간의 아프리카 사역 중에서도 말라리아로 고통받은 적이 없는데 이 동네로 들어선지 7개월 만에 5번의 말라리아에 걸리면서 죽음의 질병이라고 불리는 이 지독한 중병과 정면충돌해야 했다.
지난해 말 12월 성탄절은 생애 가장 울적하고 슬픈 경험을 당해야 했다. 12월 둘째 주일 아침에 첫째 딸 은총이가 말라리아를 시작했고, 그날 오후 나는 다섯 번째의 말라리아로 쓰러졌다. 열이 39도, 40도를 오르내리면서 온 몸은 불덩이가 되고, 마디마디 신경이 살아있는 모든 곳은 아프고 쑤시고, 처방되는 독한 약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구토와 설사, 현기증, 두통을 겪으면서 음식은 먹지도 못한다. 늘 건강하게 자라온 은총이는 구토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던 아이라 구토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작은 플라스틱 통을 침대 옆에 껴안다시피 해서 누워있었다.
세상에 많은 질병이 있지만 오죽하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죽음의 질병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을까. 실제로 가장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 말라리아 때문에 죽어간다. 오죽하면 죽을까.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드는 병이었다. 음식도 못 먹고 누워있는 딸을 보노라니 나 또한 같이 아프면서도 가슴이 저민다. 너무 안스러워 떨리는 손으로 딸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는데 눈물이 나와 기도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래도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첫 딸은 일주일간을 넘게 아프다가 결국은 병원신세까지 지면서 회복되었다.
며칠 뒤 이제는 둘째딸 예은이가 말라리아에 걸렸다. 열은 40.2도까지 올라가며 힘들어하는데 마음 아파하는 부모를 생각하며 자기는 괜찮다고 한다. 그러면서 음식도 먹지 못하고 그렇게 아프다가 말라리아약과 두통, 해열제를 복용하며 서서히 회복되었다. 이렇게 세 사람의 말라리아를 밤낮으로 간병했던 아내 현여진 선교사가 12월 24일에 마지막 주자로 말라리아로 쓰러지게 되었다. 다음날인 25일은 성탄절, 아픈 아내를 홀로 두고 세 사람만 성탄예배를 드리고 왔다.
두 주 만에 네 식구가 모두 말라리아에 걸리는 진기록을 세워야 하는 이 열악한 아프리카의 오지, 과연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는지를 되묻곤 한다. 아내가 말라리아에 처음 걸렸을 때는 왜 그렇게도 화가 나는지, 나만 걸리면 되었지 왜 애꿎은 아내까지 걸리게 하냐고 하나님께 원망이 저절로 나왔다. 두 딸들이, 그렇지 않아도 케냐에 있는 선교사 자녀학교에 떨어져 있어서 늘 가슴이 아픈데 한 달간의 방학동안 집에 와 있으면서 말라리아를 통해 육신의 고통까지 당해야 하는 것을 보면서 왜 그리도 미안하고 죄스럽게 느껴지는지 아이들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할 정도였다.
첫째 딸은 한 달 뒤 학교에 돌아간 후 다시 두 번째 말라리아에 걸려서 학교 양호실에서 처치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달려갈 수 도 없는 거리에 혼자 병실에서 말라리아와 싸우고 있을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이 오지로 들어온 이후 몇 달 만에 다섯번의 말라리아를, 아내는 세 번, 첫째 딸은 두 번, 둘째딸은 한 번의 말라리아를 치루게 되었다.
뜨거운 건기철의 열기에 더위를 먹은 우리 집 경비병의 하나였던 개도 죽어나간다. 철저하게 버림받고 완벽하게 저주받은 듯한 오지 그대로였다. 그러나 삶을 먼저 돌아보지 아니하고, 안전하고 좋은 환경과 기후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어디에 선교사가 필요한지, 어디에 선교가 필요한지를 따라서 선택한 이 오지에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은 나와 내 가족이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선교를 하고 있다는 그 확신뿐이었다.
수차례의 말라리아가 온 가족을 휩쓸어도 굽힐 수 없는 사명이 있다. 아프리카로 부름을 받았던 그 뜨거운 사랑이 이곳의 열기보다 더 뜨거웠기에, 이곳에서 받는 열악함과 불편함과 힘든 상황보다 더 거룩한 사명과 지독한 선교열의 때문에 이곳을 버리지 아니하고자 집을 짓고 이제는 신학교와 선교센터를 건축하기 위해 준비된 후원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고 했던가. 주님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는데 어찌 십자가 없이 편하고 쉽게 그분을 따를 수 있겠는가. 오늘 그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이 열악한 선교지를 가슴으로 품고, 눈물 많은 이 아프리카를 하나님의 눈물로 생각하고 온 삶으로 감싸 안으면서 저들의 눈물이 사라지고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그 하나님의 백성된 자리를 소망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저 아름다운 우간다의 태양처럼 이 오지 또한 밝고 찬란한 내일이 떠오르기를 기대해본다.

이헌도 선교사, Ph.D
(아프리카선교목회연구소장, 현재 동아프리카신학교 및 암미선교센터를 건축하기 위해 기도중에 있음)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hazinsa
이메일 : hazin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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