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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당신의 고독과 당신은 무슨 사이입니까

“당신도 고독한가요?” 한마디 물음 자체로 위로가 된다. ‘당신도’를 씀으로 “사실 나는 고독한데 혹시 너도 그렇냐”고 넌지시 아는 척해주는 말이 될 테니까. 추위보다는 따스함이, 구름보다는 햇빛이, 혼자보다는 둘이 고독을 떨치는 데 낫다고 굳게 믿어왔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고독이 애꿎은 날씨 탓인가? 고독은 애초에 인간이 갖고 태어난 수많은 세포 중 하나이다. 까만 머리, 갈색 눈동자처럼 DNA에 깊게 새겨진 나의 단면일 뿐이다.

고독했기에 인류는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고, 그 흔적 중 몇몇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눈부시게 부서지는 태양의 매력에 빠져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렸다. 잔인하고도 자비로운 바다를 바라보면서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완성했다. 그들은 고독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는지 모른다. 그저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공허함이 뜻밖에 작품이 됐을 뿐.

<당신의 고독과 당신은 무슨 사이입니까> (사진)는 남다른 감수성으로 지난한 시간을 보낸 전새벽 작가의 산유물이다. 그 옛날 예술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독을 대하는 자세다. 고흐가 태양 아래 활짝 핀 해바라기를 처연하게 그려냄으로써 고독을 비틀었다면 전새벽 산문집은 죽을 만큼 고독한 이 세상에 당신들은 안녕하시냐고 정면으로 안부를 물어온다. 삶이란 게 그렇게 않은가. 이제쯤 궤도에 올랐다 싶으면 갑자기 주변의 장막이 걷히면서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여 여기까지가 내 삶의 무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계는 훨씬 큰 무대였고, 이곳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고, 나는 어딘지 모르는 곳에 홀로 남겨졌을 뿐이라는 걸 거듭 깨닫게 되는.

전새벽 작가의 지난날은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 술을 쏟아붓는 위태한 날의 연속이었다. 태풍이 나를 잡으러 온다는 망상까지 시달렸다. 그렇게 울며 밤새우기가 일상이었다. 그러다 자신을 휘감은 우울은 선천적으로 정서성이 불안정하게 태어난 기질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이유 없이 폐가 약하게 태어난 사람처럼, 발목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처럼, 그는 정서가 불안하게 태어난 아이였다.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견뎌야 할 외로움이 있는 법인데, 그는 외로움을 느끼는 뇌가 특별히 발달한 셈이다.



정작 본인은 특별하게 발달한 뇌의 기능 덕분에 괴로웠을지 몰라도, 뜻밖에 재능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글쓰기 재능이다. 독일 줄만 알았던 남들보다 뛰어난 감수성이 그의 글에 훌륭한 배양토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뉴스를 읽는 그의 시선에 냉철함과 인간애가 동시에 느껴진다.

효도 관광으로 영국 런던에 갔다가 테러에 휩쓸려 식물인간이 된 할머니에게 쓴 편지가 인상적이다. ‘경북 영천의 한 할머니’라는 정보는 꽤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영천 사과 박스를 볼 때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가지고 나가던 사과 한 알을 볼 때마다 그중 어떤 것들은 할머니가 길러내신 사과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울컥해한다.

영천의 사과 맛을 아는 사람들, 일흔을 앞둔 부모가 있는 사람들, 런던 여행을 해본 사람들, 가족이 아픈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모여 기적이 되길 소망하며 그는 월급을 받자마자 후원계좌를 찾았다. 바다를 가르고 공중부양을 한다는 세상의 숱한 기적처럼 해외여행 중에 무차별 테러에 휩쓸려 머리를 다친 70대 환자가 뇌수술을 마치고 벌떡 일어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는 그냥 흘러들었을 토막 뉴스 하나가 감수성이 특별히 발달한 그에게는 큰 울림이 됐다. 사과를 씻으며 일면부지 할머니의 쾌유를 기원할 정도이니 말이다.

일찍이 박준 시인은 고독과 외로움을 서로 다른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고독해진다.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고독은 인간의 숙명과도 같아서 피할 길이 없지만, 내가 나를 똑바로 마주하면 고독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

스스로 고독하다고 고백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또는 입 밖으로 꺼내기 싫어서 애써 감춘다.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애써 외면할 때 비극이 생긴다. 그 비극은 우울증, 자기파괴, 정신이상, 자살 충동 등. 굳이 설명하기 끔찍하다. 그렇기에 전새벽 작가는 오늘도 묻는다. 당신의 고독과 당신은 잘 지내십니까?


이소영 / 언론인, VA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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