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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호(워싱턴한인연합세탁협회장)의 골프 칼럼] 아일랜드 골프여행기, 발리버니언 골프 클럽

전세계서 최고의 골프장으로 꼽히는 아일랜드 케리에 있는 발리버니언 골프 클럽.

1893년에 설립된 이 골프장의 올드 코스와 카섄 코스.

6 번홀 그린에 오르자 그 유명한, 그리고 수없이 사진으로 보아왔던 발리버니언의 초승달 해변과 멀리 가물가물 보이는 타운의 모습이 너무나도 평화롭게 들어왔다. 이 코스는 그 어느 아이리쉬 골프 코스와 다르다. 아니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 곳 만이 지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마술적 자연의 매력과 그것을 극대화 시킨 인간의 환상적인 지혜는, 마치 최고가의 불고기와 담백하고 시원한 물냉면의 조화며, 선남 선녀들의 앙상블 왈츠다.

첫 홀 티박스 오른편에 천 년의 역사를 지닌 무덤들, 그 수많은 비석들은 오랜 비바람에 뉘어지고, 힘든 듯 굽어져 있고, 퍼렇고, 누런 이끼가 피어있는 모습, 갈릭 십자가 문장, 하나의 수채화다. 그러나 무덤들은 골퍼들에게 세속적인 삶을 뒤로하라는 암시와 함께 골프에서도 삶과 죽음이 있음을 알리는 묵시록 이었다.



심한 슬라이스를 내면 이 무덤 숲에 빠진다. 잠자는 영혼들을 깨운다며 그대의 오늘 라운드는 괴멸될 것이다.

두 번째 홀은 445 야드 업힐, 파4. 세 번째 다운힐 파3 는 224야드, 하나 위안을 가진다면, 뒤바람이라는 것.

대충 짐작이 가는가. 어려운 파를 하고 4번 티박스에서 올라서니 페어웨이 오른쪽에 개인 집 하나가 달랑 골프코스 안으로 들어서 있다. 황당한 것은 250달러 그린피를 받는 코스에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하면서 가보면 무척 소박한 집이다.

아마도 오래 전부터 있어온 듯한, 그러나 그 집을 보호 하고자(슬라이스 공에 얼마나 많은 유리창과 벽이 손상됐을까) 설치했을 법한 그물도 없다. 미국인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아일랜드에서 미국식을 찾는다는 것은 무리. 4, 5 번 홀 오른편 은 모두 OB(Out of Bounds)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코스 전체를 돌며, 슬라이스 골퍼이든 훅 골퍼이든 균등하게 설계돼 있어, 잘못된 샷의 페널티 는 각오 해야 한다.

오른편은 OB이며 철망 그리고 육로와 차도다. 세인트 앤드루 17홀과 흡사한데, 동네 사람들의 도보 통행이 상당히 많은데, 이들은 걸어 가다가 골퍼가 두번 째 샷을 칠 때면 멈춰서 갤러리가 되어 주고 멋진 샷에 박수까지 쳐준다. 골프가 하나의 생활화 되어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파5, 5번홀 페어웨이에서 투온(two on)을 하고자 3번 우드로 날렸다 그러나 야심찬 샷은 생각과 달리 오른쪽으로 밀려 도로변 철조망 방향으로 흰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린크 코스의 러프는 고비다. 순간 가슴을 저며 오는 자책, 230야드 남은 거리 왜 9번이나 피칭으로 부드럽게 치지 않았을까. 몸은 아직 덜 풀렸는데, 오른편 인도를 걷다 멈추어 내 샷을 지켜보던 젊은이 둘이서 그 순간 잠시 머뭇거리다 가던 길을 재촉한다. 아무 말없이. 이런저런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걷는 그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때론 조언이 아닌 무언의 응원. 그래, 그들도 나의 욕심과 욕망을 알리라, 그리고 우리가 항상 그것들에 지배돼 살고 있다는 것을. 결국 로스트 볼로 인하여 버디를 노렸던 파5 에서 더블 보기를 범했다.

아, 오늘은 또 어떻게 마무리 될까 하는 걱정과 함께 올라선 다음 홀 6번 티박스는 상충된 인간의 삶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까. 그토록 아름다운 해변가에 싸구려 트레일러 파크가 들어서 있고, 해변 바람에 펄럭이는 파란 물은 마치 만국기들의 휘날림. 과연 이런 장면과 위치라면 미국에서는 벌써 몇 백만 달러짜리 집들이 들어서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때 마치 쇠붙이가 돌 바위에 떨어지듯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 나는 지금 미국에 있는 게 아니다.

너무 속세에 젖었나, 아니면 내가 속물인가. 그러나 이러한 잡념 역시 앞으로 내가 지닌 모든 능력을 불살라야 할 남은 라운드와 감히 범인들이 넘볼 수 없는 선사 나 도인의 골프가 다가온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소인의 생각이었던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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